Biography/장년시대(2008~2014) 46

e시니어진입기 - 엄마... 엄마... 엄마...

60세에 부르는 이름... 엄마... 엄마... 엄마...   응급실로 갔다가 입원하신 엄마는 상태가 점점 나빠져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 중환자실은 1일 2회의 면회시간만 허락된다. 그래서 그곳에 누워계시는 엄마를 하루 두 번 밖에 뵐 수가 없다. 너무나 고통스러워하시는 엄마를 볼 때마다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귀에 대고 수없이 말했다. ‘엄마... 사랑해... 엄마... 감사해... 엄마... 고마워...’ 육체의 시스템이 모두 제 기능을 잃어가는 가운데서도 엄마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믿으며 반복해서 말했다. 때로는 알아들으시는 듯... 때로는 고통 때문에 듣지 못하시는 듯...   그리고... 2015년 2월 1일 오후 4시 19분... 엄마는 마지막 숨을 쉬셨다. 엄마를 떠나보내는..

e시니어진입기 - 무료한 시간에

무료한 시간에   이렇게 심심하고 무료한 시간을 맞으면 지나간 세월을 떠올려보곤 하는 습성이 있다. 그것은 계획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소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구체적인 대상의 비판을 받지 않아도 되고 위험 부담도 없으니까 나로서는 해볼 만한 놀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내 앞에 놓여있었던 여러 갈래의 길을 떠올려본다. 그때 그 길을 선택하지 말고 다른 길로 갔으면 어땠을까. 스쳐 지나간 남자들 생각도 해본다. 내가 그 사람과 결혼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저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성공하지 못한 일도 떠올려 본다. 처음 시도한 일이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세 번째 시도한 일이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마구..

e시니어진입기 - 떨어지지 않는 눈물이 슬픈 이유는...

떨어지지 않는 눈물이 슬픈 이유는...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 빈자리에 슬픔이 찾아온다. 기대하지 않았던, 아니 예기치 못했던 감정인 슬픔이 살포시 내려앉으면 그 깃털 같은 무게에 마음이 무너지고 만다. 인생의 꽃봉오리에서 멈춰버린 삶이라고 한숨짓고 있는 이 밤에, 건조한 눈망울이 촉촉이 젖어들고 있는 이 밤에, 누군가가 한마디 말이라도 건네준다면 금방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이 밤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목련꽃잎이 우수수 떨어져 내릴 것 같은 이 밤에 느껴지는 진한 슬픔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엔 소리 없는 파장만 번져갈 뿐 눈물은 쏟아지지 않는다. 이토록 마음 아프고 상해도, 서럽도록 가슴 시리고 아려도, 눈물 되어 떨어지지 않는 나의 눈물이 나는 참 슬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e시니어진입기 - 어른으로

어른으로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한다. 다 자란 사람이라는 것은 몸이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겠지만, 우리는 보통 마음이 다 자라서 넉넉한 그런 어른을 기대하게 된다. 다른 사람을 너그러이 품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나부터도 어른의 역할을 잘하며 산다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어른이라는 말에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어른들이 할 일, 어른이면 해야 할 일 등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을 충분히 자라게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어른들의 책무이며 의무라는 점에서 생각이 멈춘다. 결국 자기 일에 책임을 지는 어른이야..

순례의 길

순례의 길 (2014)  거리 노숙인의 시간축은 철저히 ‘현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간개념이나 공간개념이 다르다고 한다. 난 최근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관련이 없는, 아니 과거와 미래가 없고 현재만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정리되지 않은 짐들을 끌어안고 잠잘 곳을 찾고 있는 노숙인이 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이러한 나의 삶은 현재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길 위를 걸어가는 순례자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 순례의 길에는 떠나온 과거의 시간이 있고, 최선을 다 해야 하는 현재의 시간이 있고, 도달해야 할 미래의 시간이 있다. 또한 순례의 길은 본향을 향해 걸으면서 과거에 매여 있거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의 짐을 무겁게 만들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는 너무나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새로운 것들..

e시니어진입기 - 버리는 훈련을

버리는 훈련을   버리는 훈련을 하자. 계속 이 주제를 붙잡은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버려야 마음과 공간의 여유가 생길 것 같은데, 막상 버리려고 하니 처음에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주변의 잡다한 물건들을 둘러보고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장 서랍을 열어보았다. 몇 개의 작은 상자들이 포개어져 있어서 내용물은 알 수가 없었다. 그중에 가장 오래돼 보이는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 속에는 20여 년 전 미국으로 갈 때 마련해 두었던 작은 선물들이 예쁜 색동지에 포장된 채로 남아있었다. 책장을 정리할 때마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물건들이다. 그 당시만 해도 고마운 누군가에게 주려고 준비해 갔던 마음의 선물들이었는데 아직도 제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포기하는 것..

e시니어진입기 - 소박한 위로라도

소박한 위로를   무선주전자에 남아 있는 물의 양을 확인하고는 스위치를 눌렀다. 잠시 후에 방의 정적을 깨면서 물 데워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온갖 상념들도 커피물 끓는 소리와 함께 보글보글 부글부글 아우성치며 올라온다. 되어야 하는 나, 또는 되고 싶은 나가 아니고 현재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런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계속 새롭게 만들어져야 하는 내 모습이 허무한 지금을 끊임없이 낳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목표지점으로 만들어져 가야 할 나의 모습이 아닌, 지금 이미 만들어져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내 안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나로 살다가 죽어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내 모습을 즐기고 살 수는 없을까.   나는 삶에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기뻐..

e시니어진입기 - 59세...아직은...

59세... 아직은...   이제 명실공히 우리 나이로 예순이다. 어느새 나 자신을 돌보기도 벅차다고 느껴지는 나이를 맞이했다. 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현재 자체를 감사하는 여유를 갖고자 마음먹었는데 오히려 더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다. 뭔가 조급해지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지니 말이다. 내가 돌보아 주어야 할 사람보다 나를 돌봐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주어야 할 사람보다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와서 함께 먹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 안부전화를 드려야 할 사람보다 내게 안부전화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직 돌보아야 할 사람이 있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주어야 할 사람이 있고, 안부전화를 드려야 할 사람이 있다. 그러니 아직은 받아야 하는 나이라기보..

e시니어진입기 - 지금 나는 안녕한가

나는 지금 안녕한가   마구 달려가다가 멈추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가끔 있었다. 그때는 무지개 같은 꿈을 찾아 달리는데 최선을 다하던 시기였다. 요즘에는 달리기는커녕 슬슬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을 뿐인데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순간이 있다. 지금이 그렇다. 몇 주 동안 중학생인 조카의 기말고사 준비를 돕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어제 시험이 끝났는데, 당장 오늘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바로 몇 주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뿐인데도 남는 시간에 무엇을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막막하다. 그 많은 시간들에 분명히 뭔가를 했었는데 갑자기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얼마 전부터 시작된 증상이니 나이 핑계나 대볼까.   ..

e시니어진입기 - 간절함이 있는가

간절함이 있는가   심장을 뛰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간절함이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을까? 내 삶을 이끌며, 무기력함을 일깨워 주던 간절함이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을까? 미래에 대한 간절함으로 젊음을 불태우곤 했던 그 옛날 어느 시점에서의 나는 늘 갈급했다. 내 앞에 놓여있는 나의 운명을 깨닫고 싶어 불철주야 전전긍긍했다. 신탁을 기다리는 간절함이라고나 할까. 견뎌내기 어려운 시간에도 성경이나 희랍신화, 각종 위인전과 자서전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들의 시련 극복기를 떠올리며 당연히(?) 찾아올 미래의 성공을 꿈꾸는 간절함이었고, 되어야 할 나와 되고 싶은 나의 일치를 고대하던 간절함이었다.   내 삶을 결정지을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피조물로서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