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There/미국&멕시코(1999-2001)

[네번째 미국(1999년)] 또 다른 시도

truehjh 2012. 1. 18. 21:06

 

1998.06.11 : 내년 말 쯤에는 어디론가 가고 싶다.

 

6~7년 전에 나는 미국약사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와왔었다.

미국약사가 목적은 아니었고, 그것으로 안정적인 경제적 뒷받침을 하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몇 년동안 하던 약국을 정리한 후에 미국으로 가서 미술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더 발전한다면 미술치료를 공부할 수도 있게 되리라.

물론 꼭 미국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탁 트인 자연 속에서 바람같이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어디든지 좋겠다.

한국에서의 삶이 무료한 것은 아니지만 낯선 곳에서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

35세의 나는 장애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며 변화에 대한 강열한 바램으로 미국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자유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내 속에 있는 분노로 부터의 자유이어야 했다.

이제 45세에 꿈꾸는 변화는 나를 키우고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영어만 잘 할 수 있다면 별 문제가 없겠는데...

 

 

1999.08.27 : 행복한 삶

 

약국을 정리하고, 미국을 계획하면서, 해야할 일들이 너무도 많은데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한심하지 않기도 하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10년을 그렇게 살아보기로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문제다. 나는 감사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솔솔 부는 바람, 뜨거운 햇볕, 주고받는 말 한 마디, 오가는 눈빛, 말없는 배려, 시원한 빗줄기...

이런 모든 일상으로부터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또 다시 시작되는 미국행의 의미는 무엇인가.

10년 전처럼 돌파구를 찾아 나서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것도 아니다.

생의 방황도 아니다.

그냥 삶을 사는 것이다.

내가 살아낼 수 있는 만큼 사는 것이다.

그렇죠? 주님...!

 

 

1999.11.11 : 정리

 

약국을 정리한지도 한달이 훨씬 넘었고...

그 사이 일어났던 이들도 많았지만 생각대로 된 일, 또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던 일들이

모두 협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는 삶을 기대해 본다.

약국을 폐업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 할 수 있었음을 감사드린다.

 

명숙과의 만남은 지나간 내 삶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해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6년만에 왜 그녀는 나를 찾은 것인가.

왜 이 시기에... 변화를 꿈꾸는 이 시기에 그녀와 연결이 되게 하셨을까.

내가 가려고 했던 대학에 가서,

내가 되고 싶었던 정신과 의사가 되어서,

내가 살고 싶었던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그녀...

그녀는 이제 나의 천사기 되어...

아직도 진행중인 내 분노의 시절들을 위로하려 한다.

참으로 신기한 사건이다. 그녀가 나를 수소문해 찾아냈다는 사건(?)이...

제2의 삶을 살기위해 계획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주님이 관여하시고 인도하셔야 한다는 고백 밖에 할 것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라는 곳으로 나를 숨기면서...

아직까지도 장애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투정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1999.11.13 : 기대감

 

4일로 예정되어 있던 미국행은 엄마의 입원으로 인해 내일로 미루어졌다.

하나님께서 나의 앞길을  그리고내 삶의 전부를 주관하고 계시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지만

순간, 어느 한 순간, 그리고 잠시,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삶이 허무해지곤 한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사랑했던 나의 아버지,

연약한 육체로 인해 떨어지는 낙엽 같아진 사랑하는 나의 엄마,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

그리고 나에게 웃음을 아끼지 않는 예쁜 조카 주영이...

이렇게 끈끈하고 애절한 감정들은 그들이 고통을 당한다고 느껴질 때 더욱 강력해져서

삶의 방향을 변화시키고, 가치관을 바꾸고, 특정한 궤도로 삶을 옮겨 놓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 모든 것들과 결별하고 자신이 가고 있던 길을 가는 것 또한

이 모든 것을, 그 삶을 사랑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란... 이 모든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어서

어느 것 하나만이 최선이었다고 고집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1999.11.15 : 몇 가지 끈들

 

마음을 묶고 있는 몇 가지 끈들을 가지고 성인이가 있는 미국으로 왔다.

이곳에서 어떠한 삶이 전개될 것인가는 미지수다.

단지 열심히 길을 찾아보려고 할 뿐이다.

 

몇 가지 사실들에 대하여 최선을 다 해야겠다.

그 몇 가지 사실들이 남은 생을 규정한다면 난 그것으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