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아버지를위한노래

2-02) 그를 보내면서...

truehjh 2014. 2. 7. 10:25

 

1998.10.15- . 그를 보내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아이들과 함께 영안실로 갔다. 병원은 크고 시설은 마음에 들었다. 살아서는 고생만 하셨는데 하늘나라 가는 길이라도 편안하게 모시게 된 것 같아서 아이들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분향소에 준비된 남편의 영정을 바라보았다. ‘불쌍한 양반...’이라는 말 외에는 어떤 말도 소리되어 나오지 않았다. 90세가 넘으신 친정아버지가 소식을 듣자마자 일찍 오셔서 우시며 안타까워하실 때도 그냥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자신보다 먼저 간 사위의 죽음을 애달파 하시는 모습을 뵈니 죄스런 느낌은 들었지만 더 이상 무슨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멀고 가까운 친지들이 찾아와 위로해 주었고, 생전에 목사님이 어떠하셨다는 등, 편찮으실 때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는 등, 왜 미리 연락하지 않았냐는 등등의 인사말이 오가는 시간 속에 나는 그냥 멍청한 외부인 같은 느낌으로 거기에 있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결국 피곤한 내 육신이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탈이 났다. 발가락부터 경련이 일더니, 발, 다리, 배까지 쥐가 일어나 꼼짝을 할 수가 없다. 나도 따라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공포에 쌓여 또 한 밤을 새웠다. 둘째 날이 되었지만 머리 속은 온통 빈 공간이 되어 있어서 순간만이 존재하고 연속성은 남아있지 않았다. 영양주사를 맞으며 누워 있었고, 목사님들께 기도도 받으며 겨우 지탱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알 수 없다. 셋째 날에는 도봉제일교회에서 발인예배를 드리는 시간에만 참석했다. 노회의 목사님들, 이 전의 교인들, 오랜 동안 못 보던 얼굴들이 많이 있었지만 다 기억할 수가 없었다. 나는 먼저 의정부 작은 아들집에 와서 임신초기인 며느리와 함께 있으면서 하관예배를 드리고 돌아올 아이들을 맥없이 기다렸다. 넷째 날인 주일도 지나고, 다섯째 날이 되었을 때 삼우제란 이름으로 첫 성묘를 갔다.

 

넓은 자리에 안정되게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휭하니 뚫어져 나가는 것 같은 허전함과 더불어 안도감이 감돌았다. 저렇게 흙 속에 묻히게 되다니... 언젠가 나도 그 옆에 눕게 되겠지... 산소 앞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다. 시어머님, 시아버님 산소 앞에 모여 그와 함께 드리던 예배의 관경을 떠올리며 과거와 현재가 엇갈리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예배를 마치고 옛날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간단한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작은 아들 집으로 가서 몇 가지 소지품들을 챙기고 정리할 것들을 정리하려는 모양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장례절차를 치루었는데도 남은 것이 있어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의논하였다.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냥 아이들 하는 대로 따라하면 될 것 같았다.

 

이렇게 삼우제가 끝났다고 식구들 모두 송내로 내려갔다.

그와 함께 사용하던 방을 정리하고 있는 아이들은 바빠서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가 보다. 자기들이 할 일만 열심히 하며 아버지가 사용하던 물건들을 마구 치우고 있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정신이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방에서도 안절부절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아이들은 정신없는 나를 정신없다고 야단한다. 아버지를 좋아하던 아이들이 아버지 안 계시는 이제 어떤 태도로 대할까도 걱정이 되었는데 지금 보니 나를 가볍게 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찌 너무 막막하다. 이렇게 울타리가 큰 것이었나... 남편이 없으니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혹시 다시 살아오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기대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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