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아버지를위한노래

2-03) 그가 없는 날들

truehjh 2014. 2. 10. 10:05

1998.10.25- . 남은 날들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 계속 수면제를 먹었다. 꿈속에서 헤매다 보면 다시 아침이다.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이룰 수도 없는 고통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날 밤을 뜬눈으로 샌 이후 손발에 경련을 일으키며 애통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는 내 가슴은 메어지는 듯 하지만 표현이 되지 않아 갈팡질팡, 안절부절, 불안한 상태로 잠 못 이루고, 먹지 못하고, 싸지 못하고, 그냥 죽은 듯이 지냈다. 슬픈 건지 아니면 쓸쓸한 건지조차 알 수 없다. 나도 남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10여 년 동안 그의 작업이었던 신문 스크랩 파일들도 이 방에서 깨끗하게 치워졌지만 그래도 그가 있을 때처럼 느껴진다. 남편과 함께 있던 공간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다시 작은 아들이 와서 의정부로 데려다 주었다. 며느리가 끼마다 정성스럽게 밥을 차려 주었다. 몸을 보할 수 있는 음식들을 싸가지고 온 작은 딸이 목욕도 시켜주었다. 큰딸은 옆에서 조용히 많은 시간들을 함께 있으며 기다려 주었다. 나는 이렇게 아기 같은 모습으로 근 열흘을 보내고 난 후에야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일어나야지. 정신을 차려야지. 교회에 가서 인사도 해야지. 큰 아들집으로 다시 가자. 그와 함께 있던 내 방으로 가자.

 

큰아들 집으로 가니 아이들은 우리 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방안은 깔끔한 장 하나와 화장대로 정리되어 있고 작은 침대 하나가 놓여 있다. 방의 삼면을 두르고 있던 책들은 온데 간데 없고, 내가 보던 책들이 꽂혀있는 책꽂이 하나만 남아있고, 그의 사진이 한쪽 벽에 걸려 있다. 물끄러미 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흙 속에서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좀 잘해 줄 껄 하는 후회가 되다가도, 때로는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왜 병은 얻어 가지고 그렇게 힘든 시간들을 보냈을까. 쓸쓸하고 적막한 기분이 들면 사진 속의 그를 바라보며 말도 시켜본다. 이렇게 하루하루 흘러가며 그와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되겠지...

 

그가 그렇게 아끼던 ㄷ ㅂ 제일교회에 나 혼자 가기는 싫다. 그와 함께 섬기던 교회가 여전히 든든하게 서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면 화도 난다. 더욱이 친구를 만들 수도 없었던 사모의 시절이 그립지 않다. 권사라면 주위에 동료들이 많이 있겠지만 목사의 부인을 일컫는 사모라는 위치는 참 외로운 역할이다. 나는 이 곳 가까운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봉사하며 기도하고 싶다. 난 여기서 권사로써 친구들과 함께 평등한 여생을 마치고 싶다. 얼마 전에 할머니 성가대도 조직되었으니 나는 다시 성가대에서 봉사할 수도 있다. 결혼 전 성가대에서 한껏 뽐내던 목소리로 활동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니 그립기도 하다. 이제 그와 만나기 전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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