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한지붕아래서

공공의 적

truehjh 2014. 9. 6. 19:45

     

나이 든 여자들이 모이면 어김없이 시댁 특히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의 흉을 본다.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결혼한 여자들은 모두 동감하며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그들은 동변상련의 유대감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여서 열을 내며 시누이와 시어머니를 공격한다. 사실이다. 그림 그리는 곳이 그렇고, 교회의 식구들의 모이면 그렇고, 결혼한 친구들이 모이면 그렇고, 운동하러 온 사람들이 모여도 그렇다. 모두 같이 한 목소리를 낸다.  그 순간만큼은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모든 결혼한 여자들의 공공의 적이다.

 

나는 시누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올케가 되어본 적이 없다. 오빠가 내 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리고 남동생이 결혼을 한 이후에도 언제나 시누이로 살았다. 이런 나의 삶은 시누이로서의 대표적 케이스의 삶이다. 이로 인해 결혼한 여자들과 함께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내가 은연중에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의 대화 속에 깔려있는 시누이들에 대한 적대감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말하기 쉬우니까 아니 그들 자신의 울분을 전이시키며 나라는 시누이의 올케들에게 동정을 표한다. 시누이인 나는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다. 내 올케들이 하는 말이 아닌데도 내 올케들이 하는 말로 들린다. 그 순간은 가까이 하고 싶은 인간 한정희가 아니고 이 세상 모든 올케들의 시누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기분을 참을 수가 없다. 물론 나의 이런 심정을 그들이 알아채지는 못하겠지만 참지 않을 수도 없다. 나만은 그런 시누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이해를 따지는 관계든 흉허물이 없는 관계든지를 떠나서 집단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관계의 대상이 되면 피곤하다. 오늘도 상한 자존감을 붙들고 낑낑 대고 있는 내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해서 혼자 큰 숨 짖고 있다가 결국은 글로 내뱉는 것이다. 이러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는가... 그렇지도 않다. 더 답답하다. 모든 인간관계가 참 어렵다. 그냥 나일 수는 없을까. 그래서 난 일 대 일의 만남이 참 좋다. 상대가 누구든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절실하게 만날 수 있으니까. 서로에 대한 배려가 집단의 편견을 넘어설 수 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끼리, 그리고 신뢰하는 사람끼리는 더욱 사랑스러운 말, 더욱 신뢰되는 말을 주고받아야 한다. 가깝다고, 사랑한다고, 아무 말이나 막하면 안 된다. 아무 말이나 막하는 사이는 아무렇게나 막된 사이다. 막역한 사이라면 더욱 더 존중과 믿음을 담아 소통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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