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국민주권

[국민주권] 박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와 백만촛불

truehjh 2016. 11. 14. 21:01


잠이 오지 않아 설치는 밤을 여러 날 보내고 있다. 지금도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이 또렷해지지 않는다. 날씨 탓인가. 세월 탓인가. 나라의 정세 탓인가. 미국의 대선 탓인가. 뉴질랜드의 지진 탓인가. 이런저런 이유를 다 대봐도 딱 떨어지는 마땅한 핑계가 없다. 그냥 내가 정신을 차리기 힘들고, 무언가 눈앞을 가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여러 SNS를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 같은 증상으로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없고, 붕 떠있는 듯한 상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료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에 보지 않던 TV의 종편 채널 앞에 멍청히 앉아 있다거나, 컴퓨터가 있는 책상으로 자리를 옮기면 다시 인터넷 뉴스를 찾아본다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핸폰의 모니터를 들여다 보는 등 매체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뉴스가 쏟아져 나오니 집중해서 깊히 생각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상태로 얼마나 더 지나야 할 것인가.

   

한 국가를 책임진다는 대통령이 자신을 '외로운 사람'으로 표상하면서 국가정치를 지극히 사적으로 폄하하는 두 번째 사과문을 발표한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분노를 넘어 막막함과 답답함을 참지 못한 시민들이 급기야는 100만 촛불이 되어 광화문에 집결하기에 이르렀다. 11월 12일 광화문역을 이용한 승객의 수가 132만 명이 넘는다 하니, 집회참석자 백만명이라는 숫자는 현실적이고 실체적인 숫자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숫자의 크기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비폭력 모임 즉 평화적 시위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흩어진 후에도 누군가가 남은 쓰레기를 치우는 일까지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촛불집회에 대한 시민의 의식수준이 이러한데... 문제해결을 위한 정치적 해법의 수준은 아주 미미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명쾌한 결말에 대한 기대는 거의 절망에 가깝다.


수습책이 불투명하고 누구도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니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동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것보다도 못하게, 막장 드라마 한 편 찍는 것보다도 못하게, 국가가 운영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도대체 어디까지 국정을 농락했는지 궁금하고 화가 났었지만, 난무했던 추측들이 거의 실제상황이라는 증거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어 이제부터는 걱정이 된다. 후세에 어떤 세상을 남겨줄 수 있을지 막막하다.


법률적 용어인지는 모르겠지만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참 이상한 말을 요즘같이 많이 듣고 산 적도 없다. 의심과 불신 속에서 자괴감을 느끼며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내 삶의 본질로 회귀하는 능력이 약화된다. 내 삶이 아닌, 실체가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져서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외부의 탓만 하다가는 이 시간들을 견뎌내기 어렵기 때문에 나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와 맑은 정신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그 어떤 것으로도 왜곡되지 않은 역사적 시간 위에 오롯이 서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