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참좋은이웃

진보정당의 노동운동가 노회찬

truehjh 2018. 7. 24. 09:48


거실과 작은 방의 창문을 모두 열어 놓으면 바람길이 생긴다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으로 또는 맞부딪치는 바람으로 인해 등줄기에 미풍이 느껴지곤 하는 길이다. 바람이 슬쩍 지나가도 보이지 않는 그 길에 의자를 놓고 오늘도 아침부터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떠나는 사람들을 아픈 마음으로 추모하며 실바람의 어루만짐과 위로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오전의 따가운 햇살이 가득하게 내려앉은 마당은 아직 싱그럽다. 그 푸른 공간을 향해 열려 있는 창문으로 깻잎 향이 묻은 바람 한 줄기가 들어와 내 코를 간질이고 지나간다.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깻잎 두 구루의 무성한 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그 향이 참 좋다. 인위적으로 만든 향수와 비교할 수 없는 향이다. 1907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더웠다는 지난밤을 지새우고 맞은 아침의 찜통더위 속에서도 깻잎은 깻잎의 향기를 품어내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없는 바람 한 줄기에 묻어있는 무심한 평정이 무더위와 허무를 견디고 있는 나를 깨우친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향기를 내뿜고 서있는 일이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인고의 세월을 지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며 또한 행복이다.

 

자신만의 향기를 내뿜다가 함께 묻어온 악취 때문에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어제 이 시간쯤에 스스로 목숨을 내던진 한 정치인의 죽음을 애도한다. 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입법에 크게 기여한 그는 자신에게 묻은 검은 점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온통 검은 점으로 점철된 사람들은 오히려 부끄러워하지 않고 더 많은 점으로 가리고 있는데, 그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리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나 보다. 점 하나 가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점들을 몸에 묻혀야 한다는 현실이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악취에 몸을 담가야 악취를 의식할 수 없게 되는 자신의 미래가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존재를 모두 부정당하고 말 것 같은 내일이 두려웠을까. 자기가 내세웠던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자괴감, 그 절망 속에서 선택한 죽음은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선택한 죽음일까.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끝끝내 살아내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스스로 정의롭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 약한 선택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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