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건강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나간 시간들이 현재를 만들었으며, 현재의 시간들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과거와 현재의 노력은 좀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으며 꿋꿋하게 버텼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지나간 시간들은 영광의 상처로만 남아있고, 현재의 시간들은 미래의 사건들과 별 관계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현재를 유지하는 것만도 힘겹다. 미래의 시간에 큰 영향을 끼칠만한 사건을 지금 새롭게 만들기는 더욱 어렵다. 지난 시간들은 현재의 시간에 영향을 미쳤는데 앞으로의 시간들에게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니 미래 또한 예측이 불투명하다. 육체의 한계에 부딪쳐 당황하는 시간을 보낸 후부터 든 생각이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육신이 심각한 고통 중에 있으면 자기 자신 이외의 것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다. 아니 여유라기보다는 여력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에 자신을 돌볼 에너지마저 고갈되어가는 상황에서 다른 어떤 생각을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얼마 동안 척추의 문제로 심한 통증을 겪었다. 그 순간에는 내 몸이 아프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통증을 경감시키고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고 시도해 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내 몸 상태에만 귀 기울이고 돌보아야 그 고통을 감내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온전히 몸의 건강을 위해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잘하고 있는지를 따져볼 기운이 없었고, 또 달리 어쩔 방도도 없었다. 몸이 아프면 이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또 한 가지, 정서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서운함이었다. 내가 베푼 만큼 돌아오지 않는 것 같이 느껴져서 섭섭한 감정이 부풀어 오른다. 마음이 불편해지니 소화도 안 되고, 우울한 기분이 되풀이된다. 누군가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니 늙었나 보다고 응수한다. 그 섭섭함이 노년의 주 감정선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걱정이다. 하긴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몸과 마음의 건강은 각기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정신을 우선순위의 가치에 두고 살았던 젊은 시절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뒤따른다는 말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 상관관계를 애써 부정하고 싶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서 마음도 삐뚤어져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튼 나는, 내가 가진 신체의 장애가 마음에 병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춘기와 청년기의 방황을 통해서도 마음이 성장해 가는 계기로 전환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정신이 건강해야 육체의 약함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세끼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야 육체적인 건강이 유지되는 것처럼, 매일매일이 의미 있는 일로 지속되어 갈 때 정신적인 건강도 유지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매 순간 의미를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처럼 정신적인 건강을 앞세우며 살았던 지난 시절엔 심하게 병고에 시달려 본 적도 없고, 커다란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당해 본 적도 별로 없다. 정신건강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다 보니 다행스럽게도 신체적으로도 꽤 건강하게 살아왔다.
중년기를 지나면서는 사회활동이나 취미활동을 하면서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나 자신만을 위하는 삶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으로 인권 관련 NGO 활동에 참여했다. 이웃을 향해서 마음을 여는 일에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여러 종류의 SNS를 통해 자아와 타자와의 소통을 시도했다. 다양한 독서와 더불어 그림도 배우고, 미술관이나 음악회를 찾아다니며 예술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진을 배우며 사물과 타자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능력도 키우고,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국내외의 자연풍경을 즐기며 다니기도 했다. 늘어놓고 보니 자랑질이긴 하지만 정신의 건강을 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러나 시니어로 진입하고 있는 지금은 다르다. 정신의 건강이 육신의 건강을 이끌어갈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그야말로 육체가 건강해야 정신이 건강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육신의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병원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삶의 모든 시간을 채울 수는 없다. 지금까지 정신의 건강을 위해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였듯이 육신의 건강을 위해 애쓰며, 음식을 잘 섭취하고, 꾸준히 운동도 하고, 소소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질병이나 노쇠함과 친해지려고 노력하여야겠다. 이제부터야말로 몸의 건강을 우선으로 여기며 살아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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