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방문
최근에 들어 컴퓨터와 핸드폰 그리고 TV 모니터를 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대신에 책을 읽는 시간은 많이 줄어들었다. 작은 글자를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커지니 책을 대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쓰고 있는 돋보기 도수를 올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영부영 지냈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계속 눈이 피곤하고 어릿해 보이는 증상이 심해졌다. 매일 컴퓨터 작업을 해서인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일까. 눈의 상황에 대하여 잘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안과에 갔다. 의사는 원시가 아주 심해졌다고 하면서 두 가지의 안경을 처방해 주었다. 1년에 한 번씩은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단다. 3~4년 전에 안과에 갔을 때는 나이에 맞게 백내장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이번에는 안경 두 개를 새로 구입해 사용하라는 정도의 말만 들었다. 아직 백내장 수술을 이야기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아 안심을 했다.
돋보기의 도수를 올리고 평상시에도 안경을 써야 한다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눈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백내장 수술을 하자는 말을 들을까 봐 조바심쳤는데, 아직은 아니라고 하니 고마워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안과를 나왔다. 사실 안과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나쁜 결과가 나올까 봐 우울하고 불안했다.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은 누구나 다 비슷할 것이다. 만약 수술을 해야 한다면 어찌할까. 내 생활에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길 것 같아서 걱정이 앞섰다. 변화에 대처할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언제, 어디서,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병원을 가야 하나가 문제였다. 하긴 혼자 가면 되는데 뭘 걱정하나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누군가와 함께 가면 안심이 될 것 같은데 그 누군가가 없다는 상황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었다.
눈앞은 여전히 어른거리고 불투명하다. 사람들의 표정이 잘 감지되지 않고, 사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으니까 답답할 뿐 아니라 판단에 대한 자신감마저 없어진다. 확실하게 마무리할 수가 없어서 그냥 대충 지나가려는 습관이 생기는 것 같아 걱정도 된다. 뭔가를 잊어버릴 때는 명료하게 볼 수 없으니까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다. 상황을 판단할 때 사물을 정확하게 본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보이는 물체가 흐릿하고 경계선이 이중 삼중으로 보일 때는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정확하게 볼 수 없으면 지나간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추측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간판이나 길거리 포스터를 보며 지나가고 있다고 하자. 아는 단어는 보이고 모르는 단어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과거의 경험과 선입견이 지금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고착된 편견으로 사물을 보게 될까 봐, 그래서 오판하게 될까 봐 두렵다. 마음의 눈이 맑고 밝아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진다. 노화로 인해 눈을 감싸는 모든 근력이 약해지고 눈 자체의 근력도 떨어지는 상황에서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없듯이, 정신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고, 발달하는 과학과 변화되는 상술에 물들면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과 같이 피해 갈 수 없는 주변 상황으로 인해 마음의 눈이 어두워질 것이라는 말이다. 현재 주어진 조건들 속에서도 정확한 판단을 하고 마음의 근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워질 것 같아서 미리 걱정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사물은 정확한 것인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판단은 올바른 것일까. 나의 시력과 맞물려 마음의 눈은 건강한가. 오해나 이해타산적인 시각을 가지고 편협하고 혼탁한 자아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뒤돌아보아야 할 때다. 더 이상 혼탁해지지 않은 눈과 진실함으로 나 자신과 이 세계를 볼 수 있다면 진정성(authenticity)이 부재한 이 시대라 할지라도 진정한 자아(authentic self)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너 자신이 돼라(Be yourself, everyone else is already taken.)’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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