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같이/Minimal Life

[영태리집] 가을 태풍

truehjh 2019. 9. 7. 18:28

 

가을 태풍

 

궁금해서 창문을 다시 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람은 작은 나뭇잎을 흔들더니, 이젠 제법 강해져서 나뭇가지들 까지 흔들고 있다. 잠시 후에는 바람소리가 윙윙거리고 거세지더니 키가 큰 풀들도 쓰러질 듯 흔들린다.

 

로봇청소기를 돌렸다. 창밖의 소리를 덮어버리는 청소기의 진동소리 덕분에 내 심장은 잠시의 여유를 되찾는다. 청소기가 제 일을 마치고 조용해지면 다시 돌렸다. 로봇청소기를 두 번씩이나 돌렸는데도 아직 태풍은 지나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물걸레 청소기를 꺼내 들었다. 벽에 쿵쿵 부딪히며 청소기가 계속 돌고 있다. 와르릉 쾅쾅 바람소리도 더 거세지고 있다. 청소기 소리가 바람 소리보다 약해질 때쯤 창문을 닫았다. 바람 소리 무서워 청소기 소리로 대체해 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잠재워보려는 의도는 더더욱 아니었다.

 

거센 바람이 내가 서있는 땅을 흝고 지나가면, 수많은 상처가 남을 것이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워야 한다. 로봇청소기가 지나가며 다 흡수하지 못한 먼지들은 물걸레 청소기를 돌리면 되고, 물걸레 청소기가 다 닦지 못한 구석은 걸레질을 한번 더 하면 되는데, 태풍이 지나가며 남겨놓은 앙금은 어떻게 치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