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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truehjh 2022. 12. 13. 10:12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지음

 

책을 구입하면 표지에 얹혀있는 몇 안 되는 글자를 꼼꼼히 모두 읽는 것으로부터 독서를 시작한다. 띠지 위의 글를 읽고, 표지를 넘기면 바로 나오는 책날개의 모든 글자를 읽고, 그다음 공백으로 나오는 빈 책장을 넘기고, 다시 등장하는 제목과 속표지들도 의식을 행하듯 천천히 넘기는 것이 나의 습관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몇 장을 넘기며 읽고 있는데 프롤로그 두 번째 페이지에서 내가 좋아하는 성구 풀밭을 적시는 소낙비를 연상시키는 문구가 등장했다. 그냥 빠져들었다.

 

-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p7

 

- 머리는 자기 것이지만 생각은 남의 것이니 문제지. p30

 

-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의 출발이지. p82

 

- 정확성보다는 솔직성이 우선이네. 솔직해야 정확할 수가 있어. p124

 

- 그렇지. 글을 쓸 때 나는 관심, 관찰, 관계...... 평생 이 세 가지 순서를 반복하며 스토리를 만들어 왔다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나와의 관계가 생겨. p155

 

- 죽고 나서도 할 말을 남기는 사람과 죽기 전부터 할 말을 잃은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먼저 죽은 사람인가? 유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거라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네. p176

 

- 그것이 눈보라 치는 우주의 회오리 속에서 기어이 자기를 사는 인간의 아름답고 기구한 운명이라고 그는 가르치고 있다. p177

 

- 나는 계몽도 영광도 멀리하네. 그저 내가 좋아서 할 뿐이지. p177

 

- 그렇지. 두레박 스타일은 한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직업도 이것저것 여러 가지야. 인생이 변화무쌍해서 나는 왜 이럴까곧잘 후회는 해도 자살은 안 해. 다음이 또 있으니까. p189

 

- 나에게 행복은 완벽한 글 하나를 쓰는 거야.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지. 그러니까 계속 쓰는 것이고.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글은 실패한 글이라네. 지금까지 완성된 성인들 중에 글을 쓴 사람은 없어. 예수님이 글을 썼나? 공자가 글을 썼나? 다 그 제자들이 쓴 거지. 역설적으로 말하면 쓰여진 글은 완성되지 못한 글이야. p191

 

- 영혼의 생명력 덕분이네. 필록테테스는 영혼이 죽지 않았어. 오히려 더 강렬해졌지. ‘나 아파. 나 상처 입었어. 나 외로워.’라고 외치는 자기 모습을 객관화해서 바라보았지. 끝없이 아파하는 자기와 그것을 바라보는 자기, 그 자기와의 싸움 속에서 맑은 영혼을 갖게 된 거야. 활을 잡게 되는 거지. ‘바라보는 나그게 자의식이고 자아라는 거야. p198

 

- 나는 열렬히 지적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었다네. p202

 

- 내가 몸이 아프니 저 의자에 매일 누워 있어. 낮이고 밤이고 앉아 있고 누워 있지. 오늘은 자네 온다고 새 옷 입었지만, 평소엔 겨우 휴지로 코나 풀고 있다고. 여기 누워서 코 푼 휴지를 저쪽 휴지통에 던지는데, 어느 날은 딱 골인이 돼. 기분 좋지.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는 거야. ‘나이스 샷!’ 그러다가 내 모습이 처량한 거라. 그래서 하나님에게 하소연을 한다네. ‘하나님, 우리가 큰 거 원했습니까? 인간들에게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재앙이 너무 크지 않습니까?’ 그깟 휴지가 쓰레기통에 골인한 게 뭐가 그리 좋아서, 기뻐하는 내가 애처로워서 통곡하는 나보다 더 불쌍해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떨어지는 거야. p208

 

- 자신을 초월한 영성은 궁극적으로 몸의 바깥에서 온다네. 사고의 바깥에 있지. 다른 세계야. 기도를 통해서든, 고통을 통해서든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힘이라는 거야. p232

 

- 궁극적으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 그게 자족이지. 자족에 이르는 길이 자기다움이야. p236

 

- 하나님의 존재는 절대 고독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피조 세계 위에 홀로 서 계시잖아. p255

 

-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p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