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Trip/의료선교

한국 의료선교의 개관(1)

truehjh 2008. 12. 22. 21:13

1. 초기의 기독교 의료선교 (1884-1890)


1) 선교사에 의한 광혜원(제중원)설립

- 1885년 4월 10일/정부병원 제안서에 나타난 목표

(1) 한국인에 대한 선교가 목적

(2)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고"

(3) 한국인 의료진 교육을 표방

- 광혜원의 운영은 한국정부(외교업무를 관장하던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가 재정지원과 운영을 하고 선교부(미국북장로회)는 의술을 담당하며 의사의 급여 제공. 정부병원이자 왕립병원으로서 주로 왕실과 고관들을 치료하면서도 일반 민중들도 치료

- 초기부터 의사양성사업을 진행(1886년 3월 29일, 16명의 학생 교육)


2) 미국 감리회 스크랜튼 의사, 민간병원(1885. 9. 10)

- 민중계층을 위한 무료진료 시행


3) 부녀와 여성을 위한 치료사업

- 1887년 7월 여성치료 위해 엘러즈 여의사 파송, 왕실과 귀족 여성 치료

- 미 감리회는 여성전문병원 보구녀관(保救女館)을 이화학당 구내에 개원, 1887년 10월 메타 하워드(Meta Howard) 여의사가 한국도착


4) 공중보건 의료활동

- 1886년 여름 콜레라 유행, 제중원 콜레라 환자 치료, 모든 외국인 총동원, 각 집을 방문하고 약을 나누어 줌


5) 이 시기

헤론(Heron, 惠論)은 자신의 사역을 "위대하신 의사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함. 선교사역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서양인 의사들의 헌신적 사랑에 감동을 줌


2. 진료소의 전국적 확산과 병원전도의 개시 (1890-1904)


1) 제중원 - 운영권이 한국정부에서 북장로교 선교부로 이관(1894년), 한국정부는 병원부지를 계속 무상 임대함

- 한국정부는 5년 후 병원을 독자적 설립(1899년), 의학교 등을 정부차원에서 설립. 1894년 보건관련 부서 위생국 신설.

- 기독교의료기관은 한국민중을 위한 진료사업


2) 각 선교부의 정착과 의료 선교지역 확대

- 선교부별 의료선교의 확대(1900년 이전에 대부분 개시) : 미국장로회(1884), 미국 북감리회(1885), 호주장로회(1889, 1902), 영국성공회(1890), 미국 남장로회(1892, 1893), 미국 남감리회(1896, 1898), 캐나다장로회(1898)(선교활동을 시작한 년도와 의료선교 개시년도가 다른 경우는 앞의 괄호에 두개년도를 기재) 등 7개 선교부가 활동 중. 이 중 북장로회와 성공회가 가장 큰 규모로 의료사업을 진행(안식교는 1908년에 의료사업 개시)


3) 의학교육

- 제중원 1899년 정식 의학교(1900. 9, 정부에 등록) - 뒷날 세브란스 의학교로 발전

- 여성의료인 양성사업 : 1890년 셔우드 여의사 의료상습반 시작, 1901년 한국최초의 여의사 애스더 김 박이 미국유학 후 한국귀국

- 간호사 양성 : 1903년 에드먼즈 간호사가 보구녀관에서 간호원 양성학교 시작


4) 전도의 개시 - 1890년 북감리회의 민간병원인 시병원에서 처음으로 병원예배가 시작되었고, 1894년 제중원의 경영을 북장로회가 인수하면서 제중원에서도 병원예배 시작. 1890년대에 병원을 중심으로 하여 기독교전파의 자유가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5) 공중보건 교육활동. 전염병 퇴치활동 및 여성과 맹인사업을 위한 선교사업


6) 특수의료사업의 시작 - 맹인사업

홀(Hall) 여사는 1903년, 평양에서 맹인보호소(House for the Blind)를 설치·운영함으로써 한국 특수 교육의 효시가 되었다. 그녀는 주재 전도사의 딸 오봉래(Pong Nai)에게 점자 읽기와 쓰기, 뜨개질 등을 가르친 후 교사로 삼았으며, 소녀 원아들에게 수공업 노동을 하게 하여 재정에 보탬이 되었다. 또한 홀 부인은 뉴욕 점자법을 한국 점자법으로 만들어 도입하였다.


7) 선교사들의 헌신 : 전염병 퇴치, 질병에 걸려 사망

- 기독교에 대한 편견제거에 공헌함

- 전도의 문을 여는 데에 효과적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