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겁이 나기 시작
가끔 들려서 채소가 자라는 것도 보며 이런저런 일들을 하던 영태리의 집은 다시 세를 주기로 했다. 거의 비워 놓고 있었지만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웠었는데 갑자기 나의 공간이 축소된 듯하여 마음이 허전해진다.
2년 전 초여름에 영태리로 짐들을 옮겨 놓았다. 매일매일 사용해야 하는 물건들은 남기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거의 다 가져갔다. 많은 책과 자료들, 책장들과 커다란 책상, 옷장, 그림도구들, 사용하지 않고 있는 그릇들 등. 그 물건들은 모두 20년 넘게 사용하던 물건들이거나 한 구석에 쌓여 있던 것들이다. 그때 새 가구로 집을 꾸미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아주 커다란 책상 하나만 샀다.
나는 오래전부터 큰 책상을 가지고 싶었다. 컴퓨터와 프린터와 참고할 수 있는 책 몇 권과 메모할 수 있는 노트와 갖가지의 필기도구들을 한꺼번에 다 늘어놓고 작업을 해도 공간이 남을 만큼 넓고 큰 책상 말이다.
이제 다시 그 짐들을 다 옮겨와야 한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짐을 옮기고 방을 정리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취미생활을 즐기는 마음으로 필요에 따라 가구를 옮기곤 했다. 동선을 조정하고 안락한 느낌이 나도록 책상과 책꽂이를 재배열하고 정리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고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주 힘이 들고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일의 순서를 결정하고 매끄러운 담요를 이용해 옷장들을 옮기던 나의 솜씨가 자랑스러웠는데 이젠 귀찮은 일로 여겨지며, 번쩍 들어 올리던 책 꾸러미들조차 힘겹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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