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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갱년기수첩(11) - 내 나이 55세

truehjh 2009. 1. 20. 21:22

내 나이 55...

 

이제야 내 삶에 주어졌던 불가항력적인 조건들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완벽한 자유란 결과가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지만 말이다.

 

오십이 훨씬 넘은 나이에, 비로소 장애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이것도 내 모습인지라 받아들이고 싶다. 물론 현재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조건이나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유로운 경제상황을 갈망하고 있고, 독립된 공간을 필요로 하면서,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이행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이러한 욕구들이 나를 넘어지게 하거나 혹은 꼼작 못하게 붙들어 놓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매어있지 않기 때문에 부자유하지 않다.

 

종지기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 내용이 생각난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세 때 22세나 23세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51일 쓴 사람 권정생'

 

생을 마감하며 뒤를 돌아다보게 될 때는 나 또한 그럴 것 같다. 다시 돌이킬 수 있다면 좋은 남자를 하나 옆에 두고 살고 싶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문득문득 지금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심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후회는 큰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내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나에 대한 연민뿐이다.

 

그래서 그냥 간결해 보인다. 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