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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조상들 - 아브라함

truehjh 2010. 12. 17. 12:1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창 11;27-25;11)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철저하게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 철저하게 하나님 편에 서는 것, 신앙으로 사는 것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아브라함도 때로는 믿음이 연약해지고, 의심하고, 말씀을 잘못 해석할 때도 있었지만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거나 부정한 적이 없는 믿음의 사람이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고 아들을 번제로 드렸다는 그 사실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이 떠나라 하신 말씀에 근거해 떠났고, 하나님이 드리라고 하신 말씀에 근거해 드린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그냥 떠나고, 드리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말씀을 근거로 하는 것만이 믿음이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아브라함과 사라와 롯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갈대아우르를 떠났다. 그들은 중간에 하란이란 곳에 이르러 그곳에 머물렀다. 이 첫 번째의 떠남은 완전한 떠남이 아니다. 하란에 머무르는 상태는 불완전한 믿음, 불완전한 순종의 상태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안전한 완고함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집을 떠나라 하셨다. 이 명령에 순종하여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할 때가 75세이다.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이 보여주는 땅으로 가는 길에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기근이 기다리고 있었고, 기근을 피해 가나안이 아닌 애굽으로 내려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서 왜 기근과 피난이 필요한지 깨달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삶의 역경을 거치며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갔다.


그는 아버지의 부에 연연하지 않고 독립할 줄 아는 즉 기득권을 포기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주거지를 선택할 때도 롯이 좌하면 우하고, 우하면 좌하리라는 아브라함의 태도에서 양보의 관계성이 드러난다. 또한 롯을 구하기 위한 전쟁에서 전쟁의 노획물들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아서도 물질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그의 인간관계 측면에서 보면 아브라함과 엘리에셀, 아브라함과 롯, 아브라함과 이웃족속과의 관계에서 신실한 그의 성품이 드러난다. 그는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이었고, 손님들에게 관대한 접대를 베푸는 사람이었고, 공짜를 거절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고 적절한 가격을 지불하고 사라의 장지를 구입하는 태도 등을 보면 그의 경제관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드디어 하나님은 약속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아들을 드리러 삼일 길 가는 동안의 아버지와 아들의 심정은 하나님과 예수의 심정과 비교할 수 있을까... 실제로 행동을 하고 난 후에야 ‘내가 이제 아노라...’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아브라함. 그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하나님이 그동안 모르셨다는 뜻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 안에 가능성으로 존재했던 것이 이제 현실화 되었다는 의미이다.

결국 믿음이란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하여 현실화되는 믿음이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