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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투병 : 모차르트 레퀴엠처럼

truehjh 2011. 12. 19. 23:57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 암투병 3년 만에 입 열다] (1)투병: 모차르트 레퀴엠처럼

"고통의 터널 출구 안보이지만 그렇다고 절망적이지도 않다… 미치도록 쓰고 싶어서 첫 全作 장편소설 끝냈다"

조선일보 | 어수웅 기자 | 입력 2011.05.05 03:33 | 수정 2011.05.05 11:03  

 

2008년 5월 침샘암 발병 이후 공식석상에 일절 나타나지 않았던 소설가 최인호 (66)씨가 조선일보 를 통해 처음 입을 열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3년 꼬박 투병 중인 작가는 "아직 터널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적인 것도 아니다"라고 병세를 요약했다. 작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투병 중에 완성한 200자 원고지 1200장 분량의 장편소설을 원고 상태로 처음 공개했다(5월 하순 도서출판 여백 출간 예정). 1967년 등단 이후 그의 작가인생 44년에서 신문이나 문예계간지에 부분연재 없이 완성한 전작(全作) 장편소설은 처음이다. 그는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다"면서 "백기 투항한 3년 동안 몸은 너무 아픈데, 오히려 심안(心眼)은 밝아지더라. 그러니까 너무 소설이 쓰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는 "스스로를 미화할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 했다"면서 "혼자 은밀하게 즐겼던 창고 속의 포도주(자신의 작품)를 처음 햇볕에 내놓는 느낌"이라고 했다. 본지는 작가의 투병과 새 장편 소설의 완성, 그리고 아내에게 바치는 그의 고백을 3회에 걸쳐 싣는다.

―언제 어떻게 발병했는지 직접 발언한 적이 없다. 시작은.
"2008년 5월. 갑자기 목에 혹 같은 게 났다. 병원에 가서 알아보니 암세포라더라. 바로 수술했다. 그런데 완치가 안 되고 번졌다. 항암치료도 계속 했고. (지금은?) 터널의 출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적도 아니다."

―매체에 알려진 대로 침샘암이었나.
"애매하다. (웃으며) 나한테 확인하지도 않고 낸 것 아닌가. 혹이 침샘 밑에 났다. 의사들도 정확히는 모르더라. 물론 그 부위이기는 하고. 그게 번져 가지고 항암치료하고. 현재도 투병하고 있다. 그 정도다."

―암이라는 사실을 처음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뭐, 사람들이 암을 너무 그렇게 무슨 청천벽력으로 받아들이는데, 내 보기에 마땅치가 않아. 미화시키는 게 아니다. 분명 놀랐지만, 그렇게 큰 충격을 받은 건 아니다."

―도인이신가. 어떻게 충격을 안 받나.
"놀랐지만 담담했다고. 그러니까, 사형선고처럼 받아들인 건 아니라는 뜻이야. 암이나 감기나 똑같은 병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이 들던가.
"물론 아니지. 내가 3년이나 소위 투병해 왔다. 암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환자는 육체적으로는 병과 싸운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아니 중요한 것은, 정신적·영혼적으로도 병과 싸운다는 거다. 모차르트 얘기를 해보자.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작곡했다고. 그런데 미완성인 채로 죽었다고. 알겠지만 레퀴엠이 진혼(鎭魂)곡이다. 여기엔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얼마나 많은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다. 또 하나는 자비로운 예수님. 예수님이라면 보편적이지 못하니까, 자비로운 신이라 하자. 하루에 수백 번씩 모차르트처럼 두려움에 떤다고. 그와 똑같이 하루에 수백 번씩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지.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 죽음의 공포에 벌벌 떠는 고집불통의 나, 그리고 나를 버리고 온전히 그에게 의탁하는 나, 이 두 가지가 하루에 수백 번씩 교차된다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환자들이 그럴 거야. 그런데 작년 초부터 점점 나 자신이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쪽으로 가고 있어. 처음에는 두려움과 불안의 비중이 컸다고. 그런데 지금은 7대3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마음대로 하소서. 그런 쪽이 7이 됐어, 7."

―사람이 약해지면서 외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걸까.
"옛날 얘기 하나 하지. 내가 여섯 살 때(6·25 전쟁 당시), 변호사 하던 우리 아버지가 공산당이 내려와 가지고 청계산으로 피란을 가셨어. 천막 치고 산속에 한 달 동안 숨어 사셨지. 그때 피란 간 아버지를 만나려고 어머니와 함께 길을 떠났어. 수레를 끌고 갔어. 우리가 을지로에 살던 시절이야. 한여름이야. 계속 걸었어. 아주 고통스러웠어.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고, 날이 저물어 잠실에서 하룻밤을 잤지. 가도가도 끝이 안 나. 잊어먹지를 않아. 우리 어머니가 그러는 거야. 이 길 하나만 건너면 아버지가 있다. 하나만 더 건너면 아버지가 있다. 그 한마디를 믿었다고. 그때는 두려움이 없었어. 그런데 지금 두려워. 다시 그때를 생각해. 엄마 말을 믿었구나. 그리고 조금 철이 드는 거야. 하늘에 대고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의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 겁니다. 그런데도 두려워. 아직도 '대가리'가 벗겨지려면, 철이 들려면 멀었어."

☞소설가 최인호는…

1967년 연세대 영문과 재학 중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타인의 방' 등 초기 단편소설은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별들의 고향' '겨울나그네' 등 신문연재 장편소설은 발표 족족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70년대 청년문화의 대변자. 당시 그의 소설은 물론 원작이나 시나리오를 통해 그가 관여한 영화는 '무조건' 흥행에 성공한다는 신화를 낳았다. "1987년에 가톨릭에 귀의"한 뒤에는 '잃어버린 왕국' 등 역사소설과 종교소설 '길 없는 길' 등을 발표하며 문학의 다른 영역으로 건너갔다. 이 시기의 작품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갈리지만, 그의 등장과 성공 이후 시장의 유혹과 문단의 승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일은 후배 작가들의 일반적 관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