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시련 - 꿈을 꿀 수 없는 이유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대입학에 거절당하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그 시절에 필요한 적당량의 고민과 함께 커다란 사건 없이 지냈다. 학교 혹은 교회의 친구들 사이에서 감성의 유희로 우울할 때도 있었지만 남들도 겪는 성장기 고통이라 여기며 그저 평범하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감사하며 보통의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던 것 같다. 특히 교회 학생회 활동을 통해 또래의 아이들과 비밀 아닌 많은 비밀을 공유하면서 철이 조금씩 들어갔고,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고3의 질풍노도 같은 시기가 시작되는 날... 수학선생님이 담임으로 오셨다. 그분이 좋으신 분이라서인지 이과계의 소아마비 걸린 학생들 거의가 우리 반에 모였다. 여러 명이 함께 있으면 공동의 화제와 어려운 점을 나눌 수 있어 좋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으로 보였고 난 그 모습을 그대로 수용할 수가 없었다. 그 전까지는 한 반에 한 명 정도 배치가 되어서 나 개인의 모습을 투사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제 적라라하게 드러나는 내 모습이 너무 생소했다. 나는 비틀어진 내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볼 만한 용기가 없었다. 특히 체육시간을 참을 수 없었다. 학교 가는 것이 지옥 같았다. 고3이라는 상황에서 나의 실체를 인식하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어느 날은 수업도 안하고 일찍 학교를 빠져 나왔다. 갈 곳도 없지만 일찍 들어가면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그냥 버스를 타고 정처 없이 헤매고 다녔다. 종로 5가에서 한 바퀴 돌고 그 다음에 집에 내리면 거의 서너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코스였다. 일찍 학교를 나와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고 엄마에게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시간 때우기는 아주 적절한 코스라고나 할까. 회차 하는 곳에서 요금을 따로 받지 않는 구조여서 차비 걱정 없이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다녔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김영은선생님께서 무거운 가방을 들어 주시며 용기를 주시던 일을 제외하고는 딱히 기억할만한 일이 없는 우울한 고3 학교생활이었다.
내 모습을 인정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1학기 초를 보내고 겨우 마음을 잡아 2학기에는 다시 목표를 향해 열심히 입시준비를 했다. 나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고, 목표는 의대에 가는 것이었다. 화가도 되고 싶고, 첼리스트도 되고 싶은 유혹은 있었지만 어린 시절 낭만이었을 뿐이고 결국은 의사가 꿈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다리 수술을 받으면서 이 다음에 커서 의사가 되어 나와 같이 걷지 못하는 아이들을 고쳐주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의대에 지원했다. 그러나 본고사에 합격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최종 3차 면접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불합격처리되었다. 나는 공부도 열심히 했고, 착한 아이였는데 단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러한 거절은 아직 어린 나에게 엄청난 정신적 상해를 주는 사건으로 남겨졌다. 그 후 주변의 강권으로 인해 재수도 못하고, 삶을 포기도 못하고, 마지못해 약대시험을 보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합격이 되어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친구들에게조차 약대입학에 대하여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재수한다고 말했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의대입학이 거절되었을 때 나는 꿈꾸는 것을 포기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오던 의사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장애인이기 때문이란다. 미래의 문 앞에서 나는 단지 장애인일 뿐임을 절감했다. 이젠 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아니 내가 정말 되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장애라는 장애물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좌절했다. 이때부터 나는 간절히 바라지 않기로 했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꿈을 꿀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꿈꾸는 일을 포기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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