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학대학 4년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낙오하지 않고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 여겨질 만큼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나의 장애를 핑계 삼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의미를 찾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며 보냈지만 약사면허시험을 앞둔 마지막 한 학기는 열심히 공부했다.
약대를 졸업하고 난 후에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나의 장애는 역시 장애물로 작용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취업의 문 앞에서도 또 걸림돌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제약회사가 있었다. 약대를 졸업하기 전부터 제약회사 연구실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거리 상의 문제도 적당하고 인지도도 있는 회사라고 여겨져서 그곳에 취직을 시도했다. 회사의 임원이었던 분의 추천도 있어서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그 당시는 약사면허를 가진 약사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무엇이든지 선택해서 할 수 있을 정도로 약사의 취업이 자유로웠지만 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제외되어 있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특히 약대생들은 졸업을 하기도 전부터 취직이 거의 확정되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취직하기가 어려웠다. 소아마비에 걸린 다른 친구들도 상황은 나와 비슷했다. 약사면허증은 취득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별로 없어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개업을 서두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졸업한지 2~3개월이 지나서야 우리 동네에서 오래된 약방주인 소개로 의약품도매상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도매상에서 내가 배울 일은 거의 없었다. 회사경영자와 중간관리자와 직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사건들을 통해 사회생활의 험난한 모습들을 거의 다 보았다. 물론 사회생활규칙이라는 집단적 사고에 길들여져야 하는 과정은 있었지만 그것이 나의 삶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퇴근 후에 기타도 배우러 다니고, 만돌린도 배우러 다니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더 배우고 익혀야 하는 나이에 월급만 받고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그 후에 작은 약국으로 옮겨서 1년 정도 약국운영을 배운 후에 망우동에서 약국을 개업했다. 24살의 나이에 약국 주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 약국을 개업한 장소는 완전한 시장통이어서 적나나한 삶의 현장이었다. 갖가지 장사꾼들과 물건을 사러온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어우러지는 곳이면서도 따스한 생활공간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이지만 그 시절에는 훌륭하게 약사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과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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