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길 - 기독교교육학
개업한 약국에서 열심히 일했다. 이제 그곳은 내 삶의 터전이 되었다. 하지만 약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약사라는 직업이 주는 성취감은 너무 적었다. 나의 미래와 연관되는 꿈을 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동력이었다. 게다가 약국이라는 사업체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여서 부담감이 컸다. 직업적인 공간인 약국 이외에 내 삶을 지탱해 주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은 교회였으며 특히 교회학교였다. 여러 해 동안 교회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기독교교육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변화를 도모했다. 그 새로운 꿈은 6~7평 남짓한 작은 공간인 약국에서의 탈출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답답한 약국을 떠나 외국으로 나가면 장애와 상관없는 열린 사회가 있을 것 같았고, 새로운 삶으로의 진입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 길로 다가가기 위해 개업약사로써 열심히 일하며 틈틈이 성경을 통독했다. 그리고 교회와 나라의 미래는 올바른 기독교교육을 통해 갱신해 가야한다는 의지를 세우며 기독교교육에 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시험을 보기 6개월 전부터는 약국에 파트타임 약사를 두고 학원에 나가서 영어와 독어를 공부하면서 신학대학원 진학을 위해 차근히 준비했다. 모든 일은 순조로웠다. 유약사의 도움과 적극적인 지원으로 충분한 시간을 활용할 수도 있었다. 덕분에 첫 번째 시험에서 연신원에 합격했다. 기독교교육학을 전공도 하지 않은 내가 연신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였다. 여기에서 공부는 재미있었고, 훌륭한 교수님들과 좋은 학우들도 만났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나면 그것을 통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기회를 마련해 보고 싶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역자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벅찼다. 약국을 운영하면서 석사과정을 잘 마무리하기가 힘들어지면서 공부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기독교교육 학자가 되는 길만이 내 꿈을 이루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절박함이 내겐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현실을 살아내기 힘겨운 나머지 도피의 방법으로 선택한 샛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내 인생의 새로운 꿈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을는지를 미제로 남겨놓고 1년 만에 휴학을 결심했다. 결국 기독교교육학의 시도는 하나의 외도로 그치고 말았다. 올바른 꿈을 꿀 힘이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서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마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일단 멈추어 섰다. 바삐 달리던 길에서 멈추어 서니 나 자신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디쯤에 있는 지,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몰랐다. 밀려서 선택한 길 위에서 또 다시 떠밀려서 차선으로 선택한 길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마침 약국을 인수받겠다는 후배가 있어서 약국도 정리했다. 그리고 엄마와 아버지가 계시는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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