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로 인해 의대입학을 거절당하고 타의에 의해 강제되어 별 관심도 없었던 약학대학에 입학했다. 우리 나이로 열아홉 살이었던 나는 내가 가진 장애로 인해 꿈을 펼쳐볼 수도 없다는 원망 속에서 죽음을 떠올리며 지냈다. 장애인인 나에게 주어졌던 극심한 차별에 대하여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자신을 자학했다. 작은 시계의 초침소리를 통해 고독을 배워야만했던 그 방황의 그 시절에... 초침소리의 의미를 깨우쳐 주며 나에게로 다가온 남자가 있었다.
그는 글을 굉장히 잘 썼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편지글이다. 그는 영혼이 맑을 때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 그의 편지글을 읽노라면 나는 어느새 철학자가 되어 있었고, 사색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독서량을 따라 갈 수가 없었다. 나는 거침없이 자유로운 그의 영혼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진정한 플라토닉 러브란 마음과 영혼을 고무시키고 정신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 즉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정신적이며 관념적인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가...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 플라토닉 사랑이란 순수하고 강한 형태의 비성적(非性的)인 사랑을 말한다. 플라토닉 러브라는 용어의 의미는 플라토의 '대화' <향연>편에서 기원한다. 그것은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시작될 수 있는지, 그리고 성적, 비성적 사랑 양쪽 모두 어떻게 관련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특히 무녀 '디오티마'에게서 영감을 얻은 소크라테스의 발언이 중시되고 있다. 그는 사랑은 지혜(知慧)에 이르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디오티마, 플라토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은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즉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진정한 플라토닉 러브란 마음과 영혼을 고무시키고 정신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영어 표현로서 플라토닉 러브를 처음 사용한 것은 William Davenant가 지은 '플라토닉 러버스'(1636)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플라토의 대화편에서 덕목과 진실의 근간에 있는 최선의 사랑에서 유래된 것이다. 짧은 기간 안에 플라토닉 러브는 영국 왕궁에서 특히 찰스1세의 아내인 Henrietta Marie와 그 주변에서 유행하였다. 플라토닉 러브는 캐롤라인 시대의 몇몇 가면무도회의 테마로 유행하였으나 정치사회적 압력으로 쇠퇴했다. - 위키백과 -
그는 모든 것을 고백했다. 젊은 시절의 방황과 함께 방랑자적인 그의 행동으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가 들려주는 첫 번째 여자. 두 번째 여자, 그리고 다섯 번째 여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갔다. 하지만 내가 그 다음 번의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인생의 좌절과 방랑을 경험한 그의 삶을 헤아려보기에는 내 삶의 경륜이 너무 짧았다.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고, 그는 어른이었던 것을 내가 잘 알지 못한 것이었다. 단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 내가 상상치 못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그의 자유로운 영혼에 빠져들었을 뿐이다. 내 마음과 정신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밀려가듯 들어간 대학생활 자체에 만족할 수가 없던 암울한 시절에... 야학 교사, 농촌 봉사, 기독청년활동, 교회학교 교사 등의 교외 봉사활동을 하며 외형적인 삶은 풍요롭게 지내면서도 내 존재에 대한 깊은 부정으로 인해 절망하던 어린시절에... 나를 구원해준 플라토닉 러브...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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