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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십시오 (고전 16: 14) -2-

truehjh 2013. 2. 19. 21:19

 

교회사랑(2)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십시오 - 고린도전서 16 : 14 -



왜 나는 사랑의 교회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하여 이토록 노심초사하고 있는가.  그 교회 내부의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궁금한 나머지 자주 자주 인터넷을 들락거리다 보니 교인과 설교자들의 문제점들이 눈에 크게 들어와 마음의 평화가 깨져버렸다. 약 30년 전에 제일교회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서일까. 현재의 교회생활에 만족감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너무 부끄러워서일까.

 

80년대 초반 신학교수들에게 강의를 들으면서 어줍잖게 내가 아버지의 설교를 비판한 적이 있다. 매주 ‘공의의 하나님’을 강조하시는 아버지의 설교가 안타까웠다. 나의 아버지도 그들처럼 ‘위로의 하나님’을 외칠 수는 없을까... 그렇지 않아도 힘든 교인들에게 왜 매일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전하면서 강단에서 그렇게 눈물지으셔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날마다의 회개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해 주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위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많은 설교자들이 70년대까지는 ‘회개’를 촉구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위로’를 외치는 설교자가 많아졌고, 다음에는 ‘사랑’으로 이어지더니, 이제는 어딜 가더라도 ‘축복’을 강조하는 말씀선포를 들을 수 있다. 회개하라는 말 빼고는 다 달콤한 주제이다. 위로받고, 사랑받고, 축복받으면 되니 말이다. 요즈음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한 설교자의 말에 '순종하면 축복이고 반발하면 저주'라는 교육을 암암리에 받고 있다. 그래서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축복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회개를 촉구하면 교회를 멀리하게 된다. 아니 나부터도 회개할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별로 크게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남도 다 하는 작은 잘못들인데 나만 착한 척 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미 장식품이 되어 버렸다. 


이렇듯 교인들의 무분별함도 문제지만 설교자의 독단도 만만치 않다. 설교자들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서 말로만 그리스도를 말하고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도를 실천하려하지 않는다. 더 이상 예수의 희생을 본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 받으며, 좋은 옷을 선물 받고, 멋진 차를 타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가르친다. 더 이상 가난하고 병든 자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없다. 축복하러 다니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그저 성공의 복, 권력의 복, 돈의 복만을 기원한다. 하지만 교회가 말하는 복은 세상이 말하는 복과 좀 달아야 하지 않을까.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복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 있는 자가 아닌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주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주는 사람이 복 있는 자가 아닌가.

 

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르게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축복을 말하면서 그 이면으로 세상이 말하는 부와 명예를 섬기도록 이끌고 있는 인간적인 설교자들은 자신을 찌르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으로 돌아와야 한다. 공의의 하나님을 선포하고, 축복과 저주의 신화에서 돌이켜, 이웃사랑의 의무를 실천하도록 각성하여야 한다. 왕 같은 제사장인 교인들을 우매한 무리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