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Basecamp/Phrase

이제 나는 깨닫는다 (전도서 3 : 12~13)

truehjh 2012. 12. 31. 22:48

 

2012년 마지막 날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부르심, 바로 그 소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핑계대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인생을 속절없이 서성대기만 한 꼴이 바로 얼마 전까지의 내 꼴이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다. 나에게도 특별한 소명이 있을 것이라는 기다림... 아! 그 기다림은 허망한 욕심일 뿐이었다고 이제는 용감하게 말할 수 있다. 기다리면서 감사하며, 기다리면서 좋은 일을 하고, 기다리면서 만족을 누렸어야 하는데... 기다리는 일 외에는 한 일이 없으니 그것이 욕심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 전도서 3 : 12~13 -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기 시작한 것은 50대 중반을 넘기면서부터였다. 소명을 확신하지 못한 채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했다. 후반기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르니 두려웠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여야 하는지, 누구인지 조차도 모르면서 나의 노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모든 것이 피곤하게만 느껴졌다. 대부분의 내 연배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은 돈과 건강에 관한 것으로 축약할 수 있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둘 다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상황에서 스스로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삶의 패턴을 바꾸어야 한다는 내 안의 아우성 소리를 들었지만 그냥 나를 가만히 놔두고 싶었다.


그즈음에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자신을 책임질 용기와 능력이 없으면서 소명 운운 하는 것은 과도한 욕심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니, 소명이라는 허구에 매달려 있는 삶,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지만 그 안전한 삶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두려웠다. 내일은 하나님의 소관임을 순간순간 잊었다.


타인에게서 나 자신으로 눈을 돌린 지 2년... 처음 1년은 유유히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맡기면서 자신을 위로했다. 지난 시간들을 감사하자고 다짐하니 그 순간순간 감사할 것도 많아졌다. 일상의 즐거움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랄까... 그리고 다시 1년... 몸을 위로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일주일에 세 번 수영하러 간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올 해는 노화되고 있는 몸과 적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지냈다. 집중적으로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시각으로 보면 결심을 잘 이행했다는 자평도 할 수 있겠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다.


2년 가까운 기간의 칩거를 통해 이제 좀 현실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아니, 현실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조금 생겨난 것 같다. 그래서 기쁘다. 현실을 사는 능력이란 매 순간 감사하면서 긍정적으로 사는 길이다. 현재 만나는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하여 감동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무엇이겠는가!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는 은총 속에서 살아가는데 또 다른 무엇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이제 2013년 새로운 해를 맞으며... 결국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기본 조건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 나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 능력을 점검하고, 자아와 타자 사이에서 적당히 관계맺기를 하면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은총 안에서 기쁘게 살며, 좋은 일을 하면서, 그것으로 만족하여야겠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