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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영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전 4 : 7)

truehjh 2013. 5. 8. 21:28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 디모데전서 4 : 7 -



교회와 그리스도인


솔직히 말하자면 존재의 문제에 관한한 틸리히의 입장에 동의를 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존재의 기반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나라는 개체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또한 개체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표현은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생각과는 조금 다른 시각이라는 느낌이 든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란다. 나라는 개체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어야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야기다. 내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니, 나는 마땅히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면... 교회사랑이란 나를 사랑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인가를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렇다면 또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의미하는 기독교인 말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가 늘 내가 당면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고 사는 아니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는 개체들로써 살아가는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야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아버지 같이 완전할 수는 없지만 예수를 닮아가려는 끊임없는 자기 절제와 통제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임이 드러나야 한다.


최근 개신교의 부패된 모습은 돈, 명예, 성적 도덕적 타락에서 비그리스도인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교회 안이라고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교회 안과 교회 밖의 구별이 가능한가. 교회인지 세속인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적어도 70년대, 80년대까지만 해도 교회는 세상을 향해 외칠 말이 있었다. 특히 교육적인 면에서 세상과는 다른 전인적인 교육을 할 수 있었고, 리더쉽과 문화적인 소양을 육성하는 부분을 거의 담당하고 있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는 소금의 역할보다는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을 좋아하더니 급기야는 허구의 빛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온갖 영상매체가 교육적인 부분을 장악하고 교회는 세상을 쫒아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을 향해 외치지 못하고 교회 자체 속으로 파묻혀 가면서, 거슬러 올라가는 생명력이 없어진 것이다. 종교가 추구하는 도덕성은 축복과 저주의 신화에 밀려 공의와 인애를 회복하기에 불가능해진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교회의 모습에 냉소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