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청년시대(1973~2007)

(15) 겨자씨 창립

truehjh 2013. 4. 23. 23:24

겨자씨 -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약사들의 모임

 

약국을 정리하고, 꿈이 아닌 현실의 나를 직시하기 위해 인생의 다른 선택에 대한 열망도 내려놓았다. 그리고 도립병원에 취직하여 병원약국에서 약제과장으로 일하며 조용히 지냈다. 가끔씩 동병상련의 고충을 나누던 약사 친구들 그리고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던 약대 후배들과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1950년대에 태어나 동시대의 장애에 대한 차별경험을 가지고 있는 여약사들이었다. 우리는 불공평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선배로서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후배들에게 어떤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보다 현실적인 목표가 생겨났고, 그것을 작게나마 실천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1983년 5월 어느 날,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약사 5명이 공식적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이것이 겨자씨 모임의 시발점이며 외부를 향한 소리 없는 몸짓이 되었다. 처음에는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때문에 공부를 계속할 수 없는 학생을 찾아서 장학금을 제공하자는 소박한 뜻을 펼쳐나갔다. 장학활동을 통해 장애인의 삶에 관한 관심을 가진 약사들이 더 많이 모였고, 약사 아닌 회원들도 늘어났다. 우리는 장애인시설을 방문하여 구급약품을 공급하며, 그들의 열악한 삶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행사들을 시도했다.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약품공동구입을 하고 일일찻집도 열었다. 휠체어와 크러치 등 보조기구들을 구입하여서 장애인시설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또한 장애인끼리 모여 함께 여행도 다녔고, 대중이 이용하는 시설들을 주도적으로 활용하여 주변인들과 비장애인들에게 문화적인 충격을 주기도 했다.

 

겨자씨는 여러 가지 일들을 도모하는 과정 중에 서로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며 살아 왔다. 또한 세월을 거듭하면서 우리 안에서 이루어졌던 장애와 연결된 삶의 기본적인 명제들에 대하여 연민의 정으로 함께 고민하곤 하였다. 그러나 개인의 경험이나 고통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장애를 개인의 문제, 개인의 한계로 좁혀보려는 의식에 스스로 저항하지 못했다. 모순적이고 이분법적인 현실에서 나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확산시키지 못했고 사회의 책임으로 환원하는 노력을 간과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금까지 겨자씨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30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지켜보면서 지내온 우리들의 만남 속에는 ‘장애’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애환이 있다. 지금은 각자가 서로 다른 스타일의 삶을 살고 있다하더라도, 우리를 묶어 놓고 있는 ‘장애’라는 제한된 현상을 공유한 우리의 삶의 흔적은 그 누구도 흔들어 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그 결속력을 토대로 하여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며 살아갈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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