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계산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산수 공부를 하고 있는 도토리의 모습을 보았다. 오동통하고 자그만 손을 앞으로 내놓고, 열개의 손가락들을 번갈아가며 폈다 구부렸다 하면서, 입으로는 숫자를 중얼거리고 있는 아이에게 산수 공부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수학 공부하고 있단다.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는 초등학교 1학년생의 설명이 내 귀에는 왠지 익숙하지 않다. 예전에는 중학교에 가서야 수학이라는 과목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수와 수학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수의 관계를 다루는 대수학 중에서 미지수를 사용하지 않는 단순한 계산법만을 산수라고 하는데, 산수는 하나하나의 사실을 다루는 것에 비해 수학은 일반적인 법칙을 다루는 것이라고 한다. 혹자들은 ‘산수는 셈법의 연장이고, 수학은 수를 이용한 생각의 훈련’이라고 하고, ‘산수는 계산력이 본질이고, 수학은 논리력과 사고력이 본질’이라고도 하고, ‘산수는 노예들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 계산 기술을 가르치려는 목적에서 발전되었고, 수학은 자유인들이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교양의 목적에서 발전되었다’라고도 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산수라는 과목명을 수학이라는 과목명으로 바꾼 것은 기술적인 계산보다는 논리적인 사고를 키우고 훈련시키기 위한 변화의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사람들이 산수와 수학을 분간하여 말하든, 산수라는 과목명이 수학이라는 과목명으로 바뀌었든 간에, 아이들이 숫자를 세거나 덧셈 뺄셈을 배우기 시작할 즈음에 작은 손가락을 사용하는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도토리도 예외는 아닌 걸 보면 알 수 있다. 열개의 손가락을 귀엽게 움직이면서 수학 시험을 치르는 초등학교 1학년 교실로 들어가 보자. 물론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는 이야기다. 여러 아이들이 수학시험을 보면서 손가락을 등장시키는 모습을 그려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주먹을 쥐었다가 손가락을 폈다가 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보아도 귀엽지 않은가.
앙증맞은 손가락 열 개가 수시로 책상 위에서 움직일 것이다. 물론 엄청나게 암산이 잘 되는 몇몇 아이들은 빼놓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우선 셈을 하기 위해서는 손에 쥐었던 연필을 시험지 위에 내려놓아야 한다. 교실 안에서는 책상 위에 연필 떨어지는 소리마저 정겹게 들릴 것이다. 연필을 책상 위에 놓고, 두 손을 가슴 앞으로 올리고, 입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일 것이다. 뺄셈, 덧셈에 다 사용되는 고사리 같은 손가락은 깨끗한 손이나 때 묻은 손을 따질 것도 없이 모두 계산기가 되는 순간이리라.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에는 구구단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손가락으로라도 셈을 할 수 있을 정도면 꽤 영리한 아이 축에 끼어서 산수 시간에 칭찬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전자계산기를 만지면서 놀고, 전화기와 핸드폰의 자판에 익숙해서 숫자에 대한 개념이 예전의 아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달되어 있다. 영어 또한 마찬가지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겨우 영어 알파벳의 소문자와 대문자가 어떻게 쓰이는 줄 알게 되었던 옛 시절과는 다르다. 유치원 아니 그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노는 장난감의 이름, 집 이름, 가게 이름, 책 제목, 광고나 간판 등 많은 것들이 영어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익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지금의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은 4~50년 전의 1학년 교실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될 만큼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손가락 계산기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용했던 손가락 계산기를 요즘의 아이들도 똑같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가장 기본적인 행동양식들은 쉽게 변하지 않을뿐더러 오래 지켜져 내려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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