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 편지
어버이날을 앞에 두고 열다섯 살 소녀 도토리의 손은 바빴다. 엄마와 아빠, 친할머니,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결혼 안 한 늙은 고모까지 챙기려면 많은 수의 카네이션 리본 꽃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토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꽃을 만들고 있다. 꽃을 받고 즐거워할 분들을 생각하는지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덕분에 옆에서 보는 나도 행복했다.
드디어 어버이날, 나는 보라색 리본 꽃이 달린 볼펜, 붉은색과 녹색이 어우러진 리본 꽃, 알록달록한 실팔찌, 그것들과 함께 카네이션이 그려진 편지를 받았다. 이 모두가 정말 예뻤다. 그녀는 주는 기쁨을 누리며 만끽할 줄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주는 것을 좋아하니 말이다. 그녀에게선 형제 없이 외톨이로 자란 아이의 특성이 아직은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학교 선생님들이나 주변의 어른들이 외둥이 같지 않다고 말씀하신단다.
요즘은 외둥이로 자라는 아이들이 꽤 많다. 도토리를 비롯해서 외둥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혼자 다 받을 수 있고, 컴퓨터를 두고 싸우지 않아도 되고, 맛있는 음식을 다투어 먹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좋다고 한다. 동생 낳아달라고 떼쓰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형제간의 다툼이나 경쟁이 크게 부각될 일이 없을 터이니 당연한 것이다. 반면에 협력이나 희생의 가치를 훈련받을 기회는 없을 것이다. 또한 어떤 면에서는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크면 부담감이나 책임감 같은 것들이 쏠리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아니 부담을 나누어 가질 형제가 없으니 어깨가 더 무겁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가정뿐 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 현상에 다다른 것 같다. 젊은이들의 수가 점점 적어져서 그들의 부담이 더 커지는 세대가 도래하고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한 가정에 4~5명 정도의 자녀가 있으면 적당하다고 하던 시대였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발맞추기 위한 가족제도의 커다란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였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어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당연히 일가친척과 형제지간의 왕래가 잦고 서로 간의 삶에 관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이후 초고속성장의 시대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근로지에 따라 이동했고, 도시로 진출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대가족이 해체되어 핵가족화 되어 갔다. 아주 최근에는 또다시 급격한 사회변화가 이루어졌다. 그 핵가족 속에는 아이가 하나이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예 자녀를 포기하는 가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1인 가족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은 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정신적으로 외둥이들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는 현실이 된 것이다.
이미 초고속성장시대는 막을 내렸고 저성장시대를 맞이한 우리는 더욱 세분화되어가는 가족제도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저성장시대에 맞는 확대가족제도가 필요하다. 물론 가족의 의미를 혈연으로 묶어 놓을 필요도 없다. 인간은 서로를 향한 끈끈한 우정과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환대하는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버티게 하고,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협력정신이다. 서로를 돌보고 배려하면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회가 인간다운 사회라는 가치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N포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끝없는 경쟁구도 속에서 지극히 개인에게만 귀속되는 사회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를 실현해 주는 것이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를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도토리가 다음 해에도 어른들에게 드릴 카네이션 리본 꽃을 더 열심히 만들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카네이션 편지를 나누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게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카네이션 편지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축복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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