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장년시대(2008~2019)

e시니어진입기 - 사유의 향연

truehjh 2016. 12. 15. 13:57

사유의 향연

 

매일매일 매 순간마다 뭔가를 하고 있고, 또 뭔가 할 일이 생긴다. 어떤 계획을 세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에는 뭘 하고 뭘 해야 한다는 시간 짜임표가 이어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광범위하고 다채로운 사건이나 사유가 아닌 자질구레한 일들이라도 무시할 수가 없다. 시간표대로 실천하지 못하면 그것이 또 다른 계획이 되어 돌아온다. 근데 그 계획이라는 것이 별게 아니다. 일어나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약을 복용하는 시간을 정하면 그것이 계획이 된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것도 그냥 넘기면 안 되는 일이고 계획이다. 안부 인사를 하거나 경조사를 챙기는 일 역시 미뤄두면 안 되는 계획들이다. 이렇게 별스럽지 않은 계획들이 쌓여 갈 때면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 할 일 없이 빈둥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할 일 즉 계획이 없어지면 참 심심하고 지루해지는 것이 일상이다.

 

심심함과 지루함으로 점점 따분해져 가던 어느 날, 페이스북을 통해서 어느 철학자의 강연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급격한 호기심에 이끌리어 그 아카데미를 찾아가기로 했다. 조금 서둘러 집을 나섰는데 퇴근 시간이 다가오니 길거리 사람들의 발길은 바빴고, 나는 허기짐이 느껴져 식당을 찾았다. 걸어가는 길 방향에서 일층에 있는 깔끔한 분식집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저녁 식사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인지 손님은 별로 없었다. 입구에서 가까운 작은 테이블을 골라 앉아서 떡만둣국을 주문했다. 혼자서 먹는 밥이 이젠 아주 익숙하다. 따끈한 음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조금 일찍 강의실에 도착했다. 여유롭게 등록을 하고는, 강사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을 정도의 적정거리 좌석을 선택했다. 넓지 않은 강의실은 차차 젊은이들로 채워지고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리만큼 적막감이 감돌았다.

 

시간에 맞춰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사는 차분하고 야무진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 나갔고, 앞면의 화이트보드는 작은 글자로 가득 메워지고 있었다. 나를 기준으로 보면 참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점철된 사유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강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깊은 사유의 흔적들을 담아내느라고 여념이 없다. 오랜만에 만난 인문학 강의실 풍경은 사유의 향연이었다. 언어의 유희 같기도 하고, 사유의 유희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관망자일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내 능력으로는 그들의 사유의 세계에 범접할 수가 없었다.

 

강의 중반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환대라는 단어다. 혼자서 생각했다. 이웃사랑과 같은 의미일까. 이웃사랑의 일종이겠지. 환대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개념정리였지만 해체, 용서, 선물, 비결정성, 더블 바인드 등의 개념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였다. 철학과 종교의 깊이를 대변하는 현란하면서도 무거운 단어들의 향연에 질리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버텨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꿋꿋하게 앉아 있었다. 마치는 시간이 아쉬운 듯 수강생들은 질문하고 또 질문하고, 강사는 대답하고 또 응대한다. 그렇게 시간이 껑충 지나갔고, 끝나자마자 나는 다음 약속이라도 있는 듯 서둘러 나왔다.

 

사유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강의실에서 반짝이는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삶의 현장에서 단순하고 투박한 언어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거나 트래킹의 길 위에서 땀으로, 글을 쓰고 독서를 하면서, 그리고 명상을 하면서 사유한다. 사람들은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사유의 방식을 취한다. 그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질문을 통하여 사유한다. 모두가 하는 사유의 원천은 ...’라는 의견 충돌이다. 위험과 고생을 무릅쓰고 사람들은 왜 순례의 길을 걷는가, 왜 트레킹을 하는가, 왜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가, 왜 글을 쓰는가, 모두 왜 사는가와 같은 맥락의 질문들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디에 의미를 두며 살아왔는지, 무엇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는지,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왔는지 질문하며 기록하려는데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라는 질문까지 얹어놓는다면 나에겐 너무 버거운 과업이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조차 무안한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외쳐대면 철이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만, 하지만 남들이 뭐라고 하느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므로 계속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계속 답해야 한다. 나와 내 안의 자아, 나와 타자, 나와 세계, 나와 신과의 관계를 질문하고 답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힘이 사유며 성찰이다. 사유와 성찰의 힘이 바로 나 자신을 극복하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