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아래서 살다 보면
한 지붕 아래서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리적인 공간이 좁아서, 귀찮고 힘든 일이 많아서 어려울 수도 있다. 자질구레한 일들로 상처 주고 상처 받는 것이 힘들 수도 있고, 관계성 속에서 자존심을 건드리는 언어와 태도를 참기가 싫을 수도 있다. 사소한 문제를 크게 돌출시키거나 확대 재생산하지 않으려고 서로가 노력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신경 쓰일 수도 있다.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 그러한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인간적인 배려로 감싸주는 능력도 필요하겠지만, 그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은 축복임과 동시에 버거운 과제다.
아무튼 한 쌍의 부부와 그들의 미혼 자녀만으로 이루어진 가족 이외의 사람들 즉 핵가족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인식하고 있으므로 조심히 살고 있다. 그러나 조심한다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공유하고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서로의 삶에 관여하게 된다. 좋게 말하면 관심의 표현이겠지만 사실상은 관여가 맞다. 그것이 문제다. 물론 나를 향한 그들의 관여도 종종 있지만,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받아들이며 소화하고 있어서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삶에 관한 나의 관여다. 관심에서 비롯된 관여지만 그것이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고 간섭으로 느껴질 테니 그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나의 관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넘치는 사랑으로 포장되어 계속 가족을 가르치려 드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불필요한 간섭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이다. 이런 모든 것들에 관하여 내가 왜 관여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나 자신도 조정하지 못하면서 어느 누구의 삶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가르치려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나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판단하는 그 기준이 옳다면 지금의 내가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결론이 나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말이다. 상대적으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식구보다 더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특히 조카아이를 향한 나의 관여가 그렇다. 공부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돈과 시간을 관리하는 방법 그리고 연애하는 방법까지 이렇게 저렇게 진단하고, 예단하고, 훈수를 두려고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고모라는 이름으로 내가 마땅히 관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다가도 그 또한 나의 기준일 뿐이라고 마음을 바꾼다. 주변의 많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이상적인 관계를 찾아보기 힘든데 고모와 조카라는 관계는 오죽하랴. 다른 조카들에게도 그런 관여를 했냐고 자문해 보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특정 조카의 삶에 관여하려 하는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밖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고모라서 이기보다는 내 눈에 보이니까 본능이라고 말하는 감정이 앞서는 것이다. 사실 본능대로 살 수 있는 곳은 없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구를 선한 것으로 인정할 때에만 가능하다.
타인의 삶에 관여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나를 계속 세뇌시키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내 문제일 뿐 아니라 고쳐야 할 부분이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관여하는 것은 어떤 조건 하에서 가능한가. 인간의 본능을 억제할 수 있는 이성이 잘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도 물론 냉철한 이성의 통제 하에 인간의 욕구가 실현된다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균형 잡힌 삶을 살기 위해 나와 타인의 삶에 관여하고 판단할 때 이성과 본능에 대한 이러한 기준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에서 관계의 방향성을 잘 잡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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