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싱글의 명절맞이
내일은 추석날이라고 형제자매는 물론 조카들까지 다 남동생의 집으로 올 것이다. 나는 작년 추석에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에 있었다. 올해도 계획대로였다면 혼자 사는 친구의 집으로 가서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 우리들만의 수다시간을 즐기고 있었을 텐데, 실행에 옮기지 못하여 지금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친구 집으로 피신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싱글로 사는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조카들을 만날 수 있을 때 피하지 말고 자주 만나라는 조언을 한다. 나 또한 조카들이 온다는 소식에 신경이 조금 쓰이는지라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특히 결혼한 조카부부가 처음 참석하는 명절인 만큼 자연스럽게 얼굴을 맞대는 시간에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있으면서 내가 할 일은 별로 없다. 명절맞이를 주관하는 입장이라면 커다란 부담이 있겠지만 나는 집안 청소나 하고 추석 음식 만드는 것을 도우면 된다. 그런데 그것이 좀 난감하다. 현관이나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은 물어보지 않고도 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 그러나 음식 만드는 일은 다르다. 작은 올케는 워낙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많은 준비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같이 하자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모르는 척할 수는 없어서 ‘뭐 할 것 없어? 내가 뭘 할까? 할 것 있으면 말해!’ 이렇게 수시로 물어봐도 ‘할 것 없다’는 똑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늘 물어보아야 하는 내가 머쓱하다. 나를 위해서 하는 대답이겠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도 같이 하는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눈치를 보며 서성이다가 전을 부치거나 잡다한 설거지를 거든다. 지금도 전 부치는 일을 다 끝내고 뒷마무리까지 하고 들어왔는데 머리가 복잡하다.
명절을 맞이하는 우리 집안 행사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다 같이 모여 예배드린 후에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흩어지는 것이 전부다. 일 년에 두 번 모이고, 구정 명절엔 오빠집에서, 추석 명절엔 동생집에서 모이는 것으로 작년 이맘때 결정을 했단다. 나는 그때 제주도에 가 있었기 때문에 결정하는 현장에 없었고, 올케들의 결정에 가타부타 의견을 내놓을만한 처지도 아니었다. 명절을 어떻게 보내느냐의 결정권은 우리 집안의 며느리들이 가지고 있고, 특히 시어머니가 안 계시는 상황에서는 며느리들의 의견대로 치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일 년에 두 번이라고 가족이 다 함께 모인다고 하니 그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냥 내 자리를 찾지 못하여 무거운 마음을 끌어안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엄마도 아니고 시어머니도 아니고 며느리도 아닌 여자들의 마음이 모두 다 나 같을 것이다. 부모, 자식, 남편 없이 늙어버린 나의 현실이 명절을 보낼 때 더욱 실감난다.
우리 사회의 통념적으로 말하면, 명절은 친족 간이 함께 만나는 날이다. 그러나 식솔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즐겁기만 한 모임은 분명 아닐 것이다. 조상을 생각한다는 명분으로 모이는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흩어져 살다가 오랜만에 만나는 식구들의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며느리인 여자들에게는 가장 부담스러운 모임이 되어버렸다. 주변을 살펴보면 며느리 된 여자들의 명절맞이 긴장감은 불꽃을 튄다. 젊은 며느리 건 나이 든 며느리 건 다 똑 같이 딸들이 되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이 힘들어한다. 결혼 안 한 자녀들, 취업하지 못한 자녀들의 긴장상태도 매 한 가지다. 집안 어른들의 훈수가 듣기 괴로워 아예 명절모임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일반화되었다고 하니 명절의 명분은 퇴색하여 의미가 전락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집의 명절문화도 변하고 있다. 이전의 명절 모임이란 부모님을 위한 형제들의 만남이었다면,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다음 세대인 조카들을 위한 모임이 되는 것 같다.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이랄까. 서로 간에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픈 마음이랄까. 아니면 늙어가고 있는 부모들 자신의 안녕을 위한 타석이랄까. 이렇게 변화되어 가는 명절문화 속에서 좀 더 바람직한 만남의 문화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할까. 며느리들이 어렵게 느끼는 일들을 공평하게 서로 나눠서 책임질 수 있다면 가능할까. 어차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태어나면서 부터 만들어지는 혈연공동체를 피해서 살기는 어렵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명절의 만남에 대하여 좀 더 긍정적으로 접근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몇 시간 후면 선물 보따리들을 들고 형제자매의 가솔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저 1년에 한두 번 모이게 되는 친족들의 모임이니 서로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며느리가 되어보지 않은 나 또한 이상하게 불편하다. 부모님이 안 계시니까 나도 어른은 어른인데 어른 노릇을 못하고 있어서 일까. 아직도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안주인에게 음식을 간편하게 하자는 등 뭣도 모르고 이러쿵저러쿵 하다가는 시집 못 간 철없는 여자노인네(?)가 되기 십상일 것 같아 조심스러워서 나의 의견을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나의 집으로 초대할 형편도 안 되고, 조카들에게 웃음을 줄 만큼 마음의 여유도 없으니 그저 나 자신을 돌아보며 겸손해져야겠다고 다짐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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