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기
도토리가 중학생일 때까지는 사고의 틀이 말랑말랑했다. 그래서 작은 규칙이나 적당한 강요를 통해 좋은 공부 습관을 형성하도록 도울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기다렸다. 원하는 수준의 학습 습관이 중학시절에 완성되지 못했다면, 적어도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기회가 한 번 더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 기회를 잘 활용해 보려는 생각에서 영어 과목과 나의 전공하고 연결된 화학 과목과 생물 과목에서는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문과 학생들이 공부하는 화학이나 생물 정도는 아직 설명할 자신이 있어서, 시험 때가 되면 그녀의 요청에 의해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풀어주곤 했다. 자칭 타칭 입주가정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노력해 보자는 마음에서였다. 물론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어서 즐겁기도 했다.
도토리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이미 형성된 습관을 수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공부 방식이나 학업적인 성취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공부하는 습관이나 생활양식의 훈련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버렸다. 전인적인 교육이나 훈육을 포함한 자녀 양육의 영역은 부모의 몫이다. 그러한 형식의 양육은 독선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다. 나는 단지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그녀의 엄마와 아빠가 무한한 사랑과 신뢰로 양육하고 가르칠 때 내가 일조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써 할 일을 다 했다고 자부하기로 했다.
또 한 가지, 도토리와의 우정(?)에도 거리를 두기로 했다. 아이들은 양보도 하고 투쟁도 하면서 어우러지는 인간관계 속에서 훈련받고 성장한다. 그러나 형제가 없고 자매가 없는 외둥이들은 그러한 상호관계의 능력을 키울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외둥이인 도토리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그래서 좀 더 많은 관계 맺기와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그동안은 때로는 친구가, 때로는 라이벌이 되어 주고자 의도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비유나 상징으로 그녀를 표현하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자아가 단단해졌고 그녀의 세계가 완성되어가고 있다. 이제 독립적인 자아가 형성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물론 완전 무관심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다. 동거인 또는 나이 든 어른의 입장에서, 참견이 아닌 애정의 차원으로 응원하며, 신앙이나 삶의 태도에 대하여 조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있다. 그녀가 속하게 될 더 넓은 사회 속에서 다양한 훈련을 받으면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며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계속 성장해 가고 있는 도토리는, 인류가 염원하고 있는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신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그녀의 미래가 밝은 희망으로 열려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소망을 담아 그녀의 삶을 응원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겠다. 앞으로도 세대차를 탓하며 스스로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도토리를 응원하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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