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같이/Editing-Writing

[노트] 출간 이후의 늪

truehjh 2020. 10. 17. 11:32

 

<생애비혼자의 싱글라이프>는 원래 6개월 전에 완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교정을 하다 보니 너무 징징거리며 쓴 글 같아서 교정작업이 영 손에 잡히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핑계로 계속 미뤘다. 시간을 질질 끌며 게으름을 부렸다. 어쩌면 무력감이 원인일 수도 있다. 지독하게 무력한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 수차례에 걸친 원고 교정을 겨우 마무리 짓고, e-pub파일의 제작단계를 거쳐, 유통사에 보냈다. 내 손에서 떠나버리고 난 바로 다음 날 상용화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 즉시 구입해서 쭈욱 흩어보았다. 맥이 쭈욱 빠지는 듯했다. 뇌파도 잠시 멈추는 듯했다. 그대로 나락의 감정에 몰입되기 전에 우선 패북과 그 밖의 SNS에 올려야 했다. 홍보라기보다는 한꺼번에 지인들에게 고백하기 위함이다.

 

여러 사람이 축하하며 인사말을 남겨놓았다. 카톡으로 패북으로 다정한 손을 내밀어 주는 손길들로 인해 위로를 받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물론 혼자 갈 수 있다고 용기백배해서 길 떠나지만, 어느 순간에는 따뜻하게 내밀어 주는 손이 필요하다.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행복이었으면 좋겠다. 행복이란 자신의 내면세계와 마주하게 해주는 지점이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삶의 의미와 행복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의 행복을 지켜내기 위해 나는 어떠한 행동과 결단을 하고 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살아있음의 의미를 스스로 창출하여 부여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서서히 피로가 몰려오더니 몹시 피곤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 어떤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그냥 널부러졌다. 묘한 기분이었다. 주위가 변한 것은 아닌데 사위가 조여오는 듯한 느낌이 계속 이어졌다. 내밀한 일기를 공개하고 관심 있으면 읽어보라는 치기로 보일까 봐 겁이 났다. 나에게 애정을 가진 사람만 읽게 하려는 배려였는데, 나의 징징거림을 받아주길 바라는 태도로 보일 것 같아 몹시 마음이 불편했다. 한 편으로는 속이 시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낯간지러웠다. 이전에 내놓았던 책들은 부끄러운 배설의 글이었다 하더라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번 기록물 <생애비혼자의 싱글라이프>는 징징거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공개된 비밀을 안고 끙끙거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과 다름없다. 어리광을 부리고 나서야 비로소 기분이 풀어지는 아이 같다고나 할까. 변명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막상 드러내 놓고 보니, 그냥 모르는 사람이 제목 보고 관심이 생겨 읽어주면 고맙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를 아는 사람은 모르는 척하고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삶을 잘 소화시켜서 황금색의 똥으로 배설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급체해서 다 토해 놓은 듯한 느낌이다.

 

아직도 지금의 상태를 설명하지 못하겠다. 다 털어내고 난 후의 허탈감을 안고 뜬구름 위에 누워있는 기분이다. 할 일이 없어져서 그런가. 한 가지 일이 끝나고 나면 해결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곤 했는데 이번엔 정 반대다.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면한 일에 매달려 있다가 그 끈이 떨어지니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뭐를 해야 하나. 아무것도 하지 말자니 너무 허전하다. 이러한 삶마저 기록하며 살겠다고, 삶의 기록자로 남겠다고 바로 며칠 전에 세상에 대고 고백해 놓고, 다시 금방 기록하는 것에 대한 의미가 심드렁해졌다고 헛헛해 하고 있으니 이러한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불안한 것은 아닌데 뭔지 모르게 허무한 감정이 살짝 가을바람을 타고 다가오는 것 같아서 붕 떠 있는 상태다.

 

여전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할 일이 없는 상황에서 이처럼 당황될 수가 있는가. 지금 현재를 잘 살아내기로 그토록 염원했는데, 마음을 다잡았는데, 안 되는 것인가. 나는 계획이 없어서, 다음 할 일이 없어서 이 순간 현재가 무의미해지고 있는 이 상태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왜 이 자유로움을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 갑자기 기가 다 빠져나간 것 같다. 보약이라도 먹어야 할까 보다. 나는 조금만 더 가라앉아 있다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래야 나답게 사는 것이다. 절망에 빠졌다가도 희망을 붙잡는 것, 슬픔 속을 헤매다가도 다시 기뻐할 이유를 찾아내는 것, 그러한 모습이 진정한 나다운 모습이 아니던가. 회피하지 말고 지금 나를 직시하자. 허무함에 휘둘리다가 다시 의미를 찾아 돌아올 것이다. 분명코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