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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해방] 겨자씨 40주년 기념 모임 풍경

truehjh 2023. 5. 26. 19:12

지난해 연초부터 겨자씨 창립 40주년 기념행사를 기획하며 여러모로 생각을 많이 했다. 겨자씨 창립 멤버의 한 사람으로 의미있는 행사를 만들고 싶었고, 나 개인의 역사보다는 겨자씨라는 공동체의 역사를 돌아보며 겨자씨는 어떤 사회적 역할을 했으며, 장애인 당사자인 우리 각자에게는 어떤 의미를 주었는가를 성찰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지난 세월을 정리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모두가 겨자씨와 연결된 공동화제 장애라는 문제를 중심에 두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감사의 마음을 품고, 노후의 삶에 의미 부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25주년 때 겨자씨 활동을 거의 정리하였으니, 40주년에는 각자가 장애인으로서의 개인의 삶을 성찰하면서 열심히 살아온 모습을 보여주는 행사를 준비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나보다. 모두가 의미나 성찰이라는 단어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부담스러워했다. 이제 의미 따위는 필요 없는 나이인가, 아니 사치한 이슈가 되어버린 나이인가, 아니면 이미 의미를 충분히 찾았기 때문에 굳이 장애와 연결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긴가 막 헷갈리고 있던 차였는데, 갑자기 40주년 기념 여행을 미리 다녀오자는 의견이 나왔고, 몇몇 회원의 건강을 고려해 행사 전 작년 10월 중순쯤에 제주도여행을 실행했다. 모두 휠체어를 타고 맑고 아름다운 가을하늘 아래 제주도를 질주하였으며 무사히 잘 다녀왔다.

 

그리고 몇몇 회원들은 수필도 한 편씩 쓰면서 성찰의 시간을 가졌고, 드디어 어제 로뎀나무카페에 다 같이 모여 겨자씨 40주년 기념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기념 모임을 했다.

 

40주년 기념행사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장학금 전달이었다. 작은 액수지만 겨자씨 40주년의 의미를 담고 싶어서 결정한 일이었다.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선생님과 학생 대표가 직접 참석하여 장학금 후원 증서를 전해 주셨다. 노들장애인야학은 40~60대까지의 중증장애인, 발달장애인, 자폐인들의 공부와 자활을 돕는 곳이다.

 

기념식 중반에 20대 후반 우리의 모습이 카페의 한쪽 벽에서 사진으로 지나가고 있는데... 창립멤버 5인 중에 한 친구는 뉴욕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고, 또 한 친구는 인천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데 오는 중에 트래픽에 걸려 있고, 40주년 기념케익 컷팅은 현재 참석한 백수약사들 해님, 평화, 바람... 우리 세 명이 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40년이 지나는 동안 겨자씨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임을 깨달았다. 장애의 정도가 심해져서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고, 양크러치를 사용하게 된 친구들도 있다. 나도 최근에 그중의 한사람이 되었다. 휠체어를 타고 같이 가면 둘 사이의 공간이 너무 벌어져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기가 불가능하다. 크러치를 사용하는 친구끼리 같이 걸으려 해도 서로의 지팡이가 부딪쳐 넘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나란히 함께 걷는 것도 불가능하다. 손잡고 걸으며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된 것이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변화는 겨자씨 구성원들의 방향성이다. 나는 그 변화된 방향성에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물론 나의 책임도 있다. 변화의 속도를 조정할 열정이 생기지 않고, 의견을 조정하려고 애쓰고 싶지 않다. 모두 다 같이 늙어가는 이 마당에 각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에 제동을 걸고 싶지도 않다. 다른 장애인의 자립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리 스스로의 자활에 만족하며 거기에 머물게 되었다는 것이 아쉽다. 좋으면 모이고 싫으면 안 모이고, 즐거워야 모이고 즐거움이 없으면 관심 없는 모임이 되어갈 것 같다. 이렇게 앞으로 지속될 동력이나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모임으로 발전되지 않았다는 의미인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다.

 

40년 동안 함께한 친구들과 나눈 경험이 너무나 소중하지만, 이제는 서로를 지탱해줄 힘이 없어 보이고, 스스로를 지탱할 힘마저 없는 것 같다. 물론 우리 각자의 입지가 약해지는 노년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변명도 가능하겠지만, 그것으로 우리들의 현 상태를 만족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따라서 나는 왜 겨자씨 모임에 참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장애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고 늙어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