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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주택] 마지막 거처에 대한 기도의 응답

truehjh 2023. 5. 22. 10:04

마지막 거처에 대한 기도의 응답

 

엄마가 돌아가신 후 3년 만에 동생 집에서 분가한 것이 내 주거독립의 시작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영태리 집으로 들어왔는데 벌써 만 5년이 지났다. 이제 주거독립 6년 차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마지막 거처에 대한 기도를 끝내지 못했다. 특히 최근에 생애 마지막 주거지에 대한 걱정과 염려 속에 빠져 있었다. 언젠가는 영태리를 떠나 완전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떠나지 않았다. 완전한 주거독립을 이룰 수 있는 곳은 어디여야 하는가? 내 생의 마지막 거처는 어디여야 하는가? 순례의 길 마지막 여정에서 지친 삶을 위로받고 마음에 평화를 얻을 수 있는 텐트를 칠만한 곳은 어디여야 하는가? 마지막 거주지에 정착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하지만, 참 막막했다.

 

최종 목적지인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의식과 감정이 더 노화되기 전에, 이 땅의 마지막 거주지에 안착해서 적응하며 살고 싶었다. 그렇게 마지막 거주지에 빨리 정착하고 싶었던 이유는 늙어갈수록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어하시던 엄마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주변 환경이 변화하면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지 못하고 몸이 기억한 대로 퇴화하는 행동 양식을 보이셨다. 노화로 인한 기억력의 쇠퇴가 원인이었을 것 같다. 엄마는 아들 며느리 딸 손녀와 함께 사시면서도 그랬는데, 나는 혼자 살아야 하므로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기 전에,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기억력이 아직은 생생할 때 마지막 거처에 안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버센터든 고령자주거복지주택이든 내 의지로 옮길 수 있는 곳으로, 내 몸을 내가 움직일 수 있으며 혼자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결정되면 좋겠다고 기도드렸다.

 

이러한 기도가 지금 거주지에 대한 불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가장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환경이 영태리 집일 수도 있다. 사실 영태리의 환경은 건강한 노년의 삶에 아주 적당한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누군가에게는 로망이 될 수도 있는 거주공간이다. 텃밭에서는 쌈 채소가 나오고, 고구마와 감자와 옥수수가 자라고, 오이와 호박과 가지가 열리고, 대추나무와 자두나무와 밤나무가 싱싱한 과실을 내어주는 곳이다. 특별한 나의 노력 없이도 동생이 가꾼 열매들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다. 따라서 영태리에서의 삶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그러나 사회적 서비스를 필요로 할 때 조건이 나쁘다는 것이 문제다. 장애인콜택시, 생활보조사 등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공장 지역보다는 아파트 같은 생활형 주택 주변이 편리하고 서비스접근권도 더 나을 것 같아서 드리는 기도였다.

 

최종 거주지는 어디를 거점으로 삼아야 하며, 어디로 정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긴 했지만, 교회에 걸어갈 수 있고, 산책도 할 수 있고, 미용실도 혼자 갈 수 있고, 편의점도 쉽게 들릴 수 있는 생활공간이어야 삶이 좀 수월해 질 것 같아서 오래전부터 교회와 동생 집 주변에 있는 거주지를 알아보고 있었다. 이사가 필요할 때는 우선 교회와의 거리가 가장 첫 번째 조건이라고 어떤 이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거주지는 기본적으로 마지막까지 다닐 교회의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늙어서는 예배당 가까이에 살면서 햇살 받으며 예배당 마당을 들락거리는 것이 꿈이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한 조건 중에 하나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이제는 그런 희망의 한계점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냥 꿈이었다고 치부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거주지와 교회와 동생 집이 조화를 이루는 거리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여전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교회와 동생 집 가까운 거리에 신축되는 행복주택을 찾아보았고, 기회가 왔고, 신청했다. 4월 중에 행복주택 당첨자를 발표하겠다던 일정이 한 달 미루어져서, 지난 511일에 발표가 되었다. 당첨을 축하한다는 LH 담당자의 문자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처음에 행복주택 입주 신청을 시도할 때는 큰 부담이 없었는데, 점점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복잡한 생각이 많아졌었다. 작은 오피스텔 소유가 문제가 되었는지 주택소유 소명자료를 보내라는 통보를 받고는 포기하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당첨이 되었고, 쓸데없는 변명하지 않고 단순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확신하며, 공고된 계약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마지막 거처에 대하여 방황할 필요가 없어졌다. 감사의 고백을 하면 된다. 처음에 영태리로 이사를 결정했을 때 운전이 가능한 기간까지 살자고 마음먹었었는데, 그대로 될 것 같다. 나의 건강이 언제까지 혼자살이를 가능하게 할는지 알 수 없지만, 아직은 운전할 수 있으니 초조해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그곳이 생의 마지막 거주지가 되기를 바라며, 남은 2년간의 영태리 삶을 즐기면서 살면 되는 것이다. 지금의 건강 상태로 이만한 공간을 즐기는 것은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