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There/미국(1990-1991)

[미국(1990년)] 비상을 꿈꾸며 미국으로...

truehjh 2008. 6. 7. 16:57
 

1989.12.09 : 김이 모락모락 나는 번데기에서 호랑나비가...

 

꿈은 아직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비상의 단계를 용납할 용기도 없었고, 시도할 능력도 없었다.

난 내가 볼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안주하며 즐거워하려고 나를 몰아가고 있다.

이제라도 나를 규정짓고 그 틀에 나를 맞추면서 감사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길들이려 하는데...

그런데 숨이 막힌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쫒기는 듯한 느낌이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나의 친구 폴틸리히는 ‘안주하는 것은 세속에 물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 야고보서 1 :

 

 

1989.12.20 : 나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면...


35년 내 인생에서 이제는 삶의 커다란 획을 긋는 사건을 만나고 싶다.

결혼과 가정으로 이어지는 평범한 삶에 대한 꿈에서 벗어나서...

허구가 아닌 진지한 삶으로의 완전한 변신...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미국에서 외국인에게 약사면허를 허용하는 제도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보자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지금과는 좀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지금 현주소는 분노...

미국에 가서 약사가 된다는 일 자체는 큰 매력이 없다.

다만 약사라는 수단을 사용해 삶을 풍부하게 해 보자는 계산이다.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고 다른 공부를 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 아닌가.

미국 약사가 되어 폴 틸리히교수가 있었던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있지만...

내 조건들로 인해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난 그대로 순응하겠다.

새로운 질서와 기준이 세워지려면 기존의 것들은 와해되고 흩어져야만 하고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혼란의 시기를 용납하여야 한다.

 

 

1990.02.20 : OPI에서 FPGEE 시험공부를...

 

약사고시와 대학원 시험 때를 제외하고는 열심을 다 해 살아본 시기가 없는 것 같다.

올해 90년도를 후회 없이 열심히 공부해 볼까 하는데 주님의 인도하심을 바란다.

시험준비에만 몰두하게 되면 지금 가르치고 있는 교회의 대학부 아이들이 마음에 걸리지만

이러한 나의 시도가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7,8개월은 아무 생각없이 시험준비에 빠져보자. 이 나이에...


-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라... 이사야 26 : 4

-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며 아무도 상해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사야 27 : 3



1990.10.15 : 미국행 비자가 나왔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와 김약사는 비자 받는 절차가 꽤 복잡했다.

잘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고 시작한 일이라 기다리기로 했더니

다시 인터뷰한 후에 나는 비자가 나왔다.

 

나의 입술로 '이것은 기적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주장 하신다.

오늘 아침까지 비자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면서 차라리 편하다라고 생각했었다.

'차라리 편하다'

나는 안주 할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 당신을 핑게삼아 그냥 조용히 더 이상 분주한 희망을 버리고,

마음 편히 안주할 것이고,

당신이 거절한 나의 꿈에 대하여 추억마저 버린채

백지처럼 태연히 안주하려 했는데...

 

하나님.

나는 당신의 예비하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순종의 모습으로 서 있는지요.

나는 나의 모든 이성과 감정을 초월하여 당신의 섭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요.

주님... 이렇게 위태롭게, 그리고 이렇게 힘겹고 확신없는 무분별로,

그냥 서 있어도 되는지요.

주님... 조용히 순종하게 하십시오.

순종의 헤아림으로 지혜롭게 하십시오.

 

 

1990.10.24 : 두 달 정도의 여행이라 생각하고 짐을 꾸렸다.

 

한번 거부 되면 어렵다고 하니 김약사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으로 짐꾸러미를 꾸렸다.

저녁은 황행자, 박진희, 윤영신, 이정숙, 이기영과 함께 부대찌게로 맛나게 먹었다.

이들과의 끈끈한 정이 가슴을 푸근하게 한다. 이들은 내가 돌아올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재우녀석이 속달로 편지를 보내 주었고,

주형이는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교회를 지키겠다며 큰 소리 친다.

선생님 돌아오시면 깜짝 놀랄 일을 하나 만들어 놓겠다고...

승연이, 지영이의 애틋한 마음이 나를 위로하고, 기석과 기범도 나를 챙기더라.

엄마, 오빠, 정열, 정혜의 따뜻한 못소리가 나를 휘감는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난, 외롭지 않다.

외로울 수가 없는 사람이리라.

 

 

1990.10.26 : 미국이라는 곳이다.

 

LA 공항에서 우리 일행 5인은 3개월 체류기간을 받았다.

마중 나온 약사님들과 함께 Alexandria로 짐을 옮겼다.

방배정은 이약사가 적절하게 해 놓아서 불편하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곳에 오자마자 우리는 한국식 냉면을 먹었다.

한 달간의 생활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는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따뜻한 기온과 알 수 없는 이웃과 통하지 않는 언어와 생소한 풍습과 사고방식 속에서

새로운 것들에의 적응은 얼마만큼 가능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