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10.28 : 미국에서 맞는 첫 주일
미국에서 맞는 첫 주일이다.
뜻밖이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게 이곳 Apart Manager가 한국인이며 교인이란다.
그는 전도에 열심을 가지고 있어서 교회가고 싶은 약사들은 자기 교회에 데리고 가겠다고 했단다.
주일을 지키는 일이 어려움 없이 해결되어 기쁘다.
특히 김종환선생이 여러 경로를 통해 연락을 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임혜영약사와 L.A.약사회에 연락해 우리 있는 곳을 알아냈나 보다.
이국 땅에서 느끼는 고마움을 더욱 절절하다.
1990.10.30 : 이국 땅에서 홀로 남겨진 조용한 저녁
조용한 저녁이다. 방식구들이 외출을 했다.
말없는 침묵이 흐르면서 겨우 나는 안정감을 되찾은 듯하다.
혼자 있을 때 언제나 그랬듯이, 조용한 슬픔이 번져오면서 평화롭다.
주위의 공기는 적막이 흐르고, 무엇인가 일어날 듯한 기운이 있지만,
언제나처럼 그것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 이렇게 난 무념하게 살 수 있다.
머리 속이 복잡하지 않다. 내 능력의 한계를 미리 그어 놓았다는 사실이
욕심을 없애주고, 불안을 제거하고, 이렇게 홀로 있을 수 있게 만들어 준 것 같다.
시간은 흘러 가겠고...
나는 그냥 나로 남아 있겠고...
아무 것과도 연관이 없는 단독자로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
나에게 너무나도 부족한 현실감각과 적응능력이
어떤 때는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도 한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가.
이제 할 일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정말 겸손히 무릎 꿇고 의심해 본다.
나를 향하신 계획은 무엇일까. 있을까.
1990.11.03 : 벌써 LA에 온지 열흘이 된다.
공부한 분량은 없고 사람끼리 부딪끼는 연습만 한다. 피곤하다.
조용한 가운데 주님의 손길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내가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김목사님 부부와 임약사님을 만났다.
그의 배려는 옛날처럼 자상하고 세심하다.
이렇게 연결되리라는 것은 하나님만 아셨으리라...
1990.11.04 : 미국에서 맞는 두 번째 주일이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왔는데 난숙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여전히 감성적이다.
단숨에 달려와 눈물을 터뜨리며 반가워한다.
정말 마음이 따뜻한 친구다.
4시부터 American Red Cross에서 강의가 있기 때문에
우리 방 식구들은 그녀의 BMW를 타고 강의하는 곳으로 갔다.
1990.11.05 : 배려와 도움의 손길
어제 저녁은 Anheime에 있는 팀의 숙소에 갔었다.
조용한 미국인 마을의 풍경이 맘이 든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인사를 건네온다.
마을 Park에 앉아 박성연약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미국에 아주 머무를 결심인 것 같다.
10시쯤 김목사님부부가 그곳까지 찾아 왔다.
우리는 Azusa 대학의 어학연수원에 들려 여러가지 정보를 전해받고,
목사님 집으로 갔다. 유학생생활도 눈에 들어온다.
그의 자상함에 또 한번 감탄하고, 고맙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찼다. 미안하기까지 했다.
점심을 먹고, 성악가인 그의 부인과 몇시간 동안 쉬지 않고 찬송을 부르고,
그리고 밤에 다시 Alexandria로 돌아왔다.
나에게 오는 전화와 나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같이 있는 약사들은 나에 대한 인상이 특별한가 보다.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기적이다. 주님께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아주 많은 좋은 사람들을 나누어 주셨다.
그들 모두에게 마음의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기도드린다.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언제인가... 나도... 그들에게 나누어 주고...
같이 웃고, 같이 울며 어울어져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임을 인정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겠지.
갈매기 조나단처럼...
1990.12.01 : 시카고에서의 E.E. 시험
Chicago의 하이아트 호텔이다.
수 많은 나라에서 온 약사들과 함께 하이야트호텔에서 시험을 치루고,
식사를 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오고가는 눈인사가 모두 신기하게 느껴졌다.
EE 시험을 위해 함께 온 우리 일행 대부분은 헤어지는 인사도 없이 40여 일간의 공동생활을 끝냈다.
서로간의 목적이 다르고 생활방식이 다르므로 특별한 연대감이 형성될 수 없었나 보다.
무거운 짐들은 정리하여 영주집으로 먼저 보내고 김약사에게 이불과 슬리핑백을 주었다.
시험에 대한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이렇게 하여 9개월간의 미국행 계획이 종료되고 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요구하고 계실까.
지금의 나는 꿈속을 헤메고 있는 느낌이다.
1990.12.11 : 멋진 도시... 시카고
시카고의 분위기는 아주 매력적이고... 정리 잘 된 야경은 훌륭하다.
높이 솟은 건물들은 저마다 특색을 자랑하는듯 서있고
초현대식 건물양식이지만 웅장하고 고풍이 있어 보인다.
환상적인 조명 탓에 건물이 살아있는 듯하다.
125층의 씨어즈타워, 바다같은 미시간 호수, 자연사박물관,
열 명도 못되는 관객 앞에서 Ghost가 상영되는 큰 영화관,
몇 개의 백화점이 연결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상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연출된 조용한 마을,아름다운 장식들, 춤들, 백안의 할머니와 손녀, 부룩필드의 미국인 교회 등이 시카고에 대한 기억이다.
아니 양크러치가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는 남자와 일본식 술집에서 들이킨 시원한 맥주 한 컵,
분위기에 취해버린 투쟁적 여인의 한, 구두를 신겨주는 그 남편, 휠체어를 그는 남편,
발이 되어주는 그 남편, 늙으면 부인의 휠체어를 끌며 바바리코트깃을 세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만족해 한다는 그 남편...
영주의 집에서 일주일을 머물면서 알게 된 영주의 삶에 관한 기억이
시카고에 관한 기억보다 더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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