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There/미국(1990-1991)

[두번째의 미국(1991년)] 시련

truehjh 2008. 7. 10. 01:02

 

1991.02.07 : OPI에서 전화가 왔다.

 

FPGEE 합격증이 왔는데 온 사람들 중에서 성적이 제일 좋아서 원장이 직접 전화를 하는 것이란다.

좋은 성적으로의 합격이라니 우선 감사하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계획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오직 그 분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하시며 그분 자신이 행하시려 하시는 것인가.

나의 인간적인 계획은 언제나 수포로 돌아가고 전혀 뜻밖의 것으로 나에게 기쁨을 주시니 말이다.

 

아주사 대학의 비자로 가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데 너무 경비가 많이 든다.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막상 떠나려고 마음먹으니 걸리는 것은 부모형제자매다.

이들은 다 나를 떠나보내고도 평상시처럼 잘 살아가겠지.

내가 떠남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들이 나를 떠나는 것 같은 마음의 무너짐이 생긴다.



1991.05.02 : 다시 미국이라는 곳이다.

 

떠나왔다는 의미는 무엇을 내포하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박약사와의 룸메이트로 숙소를 결정한 후 소셜카드를 신청하고 은행에 구좌를 만들었다.

이제 운전면허를 받아야겠다.

지금, 이 순간 주님이 예비하심에 감사하며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성실하게 처리하자.

무엇을 위해 달려가지 말자. 다만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다.



1991.05.27 : 거의 한달이 다 되어 가는데..

 

언어 때문에 나는 홀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 같이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왠지 답답하고 초조한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떻게 일을 진행시켜 나가야 할지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

다만 주님만 의지할 뿐이다.



1991.06.07 : 차를 샀다.

 

첫 번째 운전면허시험에서 합격했다고 여러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애국심의 발로는 아니지만 하여간에 튼튼하다는 미국차 놔두고 현대 소나타를 사기로 했다.

플라자 약국과 고려 약국에서 인턴쉽도 진행 중이다.

 

 

1991.06.17 : 소식...

 

이제 타국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을 하고 있는데

고국에서 암투병하고 있다는 그의 소식이 전해졌다.

 

절망과 소망이 한꺼번에 너울대고...

원망과 안타까움이 엉키어 몰려오고...

의미와 무의미가 순식간에 교차되고 또 교차되는데...

왜라는 질문은 너무 허무하다...

 

 

1991.07.19 : 반복되는 일상

 

너무도 단조로운 생활이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유에 씨리얼 먹고, 씻고, 치우고, 한두 시간 공부하다가 약국에 간다.

약국에서 인턴근무 열심히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

식사하고 치우고... 모리스코디스쿨에 가고, 일주일에 한국강의 네 번, 그룹스터디 두 번,

끝나면 집에 돌아와 두 시간 정도 책을 뒤적이다가 슬리핑백 속으로 들어간다.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안해도 되는 고생을 만들어서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하다.

우리의 삶 자체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