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정우회 송년모임이 있었다.
도착한 순서대로 앉다보니 짖꿎은 남자후배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게 되었다.
건배를 하는데 나에게 ‘얘들아...’라고 선창을 하란다.
내가 “얘들아... ” 하면서 잔을 들면,
후배들이 모두 우렁찬 목소리로 “네... 형님!” 하면서 응수하는 것이다.
쑥스러우면서도 몇 번을 그렇게 하다보니 한편으로는 재미도 있다.
아마도 남자들이 즐기는 기분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음주문화에 생소한 난 이 분위기를 잘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난 남에게 음식을 건네주는 것처럼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잔을 따른다. 그냥 그렇게 된다.
음주문화를 따지는 까다로운 사람들은 나의 그런 모습이 못마땅한가 보다.
후배에게는 한 손으로 병을 잡고 그 잔에 따르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두 손으로 정중히... 어떤 사람에게는 한 손으로 거만하게... ㅋ... ㅋ...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주어야 하는지 아직 구분이 잘 안간다.
'나는 음주문화에 익숙하지 못하다.' 뭐 이러한 말로 내숭을 떨려는 것은 아니다.
고상한(?) 척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던가...?
단지 세살 버릇에 속하는 집안 환경의 소산일 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어렸을 때 아이가 자라나는 환경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말이겠지만
그 말의 의미가 50%이상 맞는 것 같다.
옛날 옛적의 일이다.
할아버지께서 술과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시고 가출(?)하셔서
외아들인 나의 아버지를 무지하게 고생시키셨단다.
그런 이유로 나의 아버지는 술과 도박을 아주 아주 싫어하셨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술 ‘주’자가 들어있는 단어인 '주전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으니 말이다.
우리 집 식구들은 '주전자'를 '주전자'라고 부르지 못하는 신세(?)로 살았다.
주전자를 '차관(차를 따르는 관)'으로 불러야 했을 정도이니 알만한 친척들은 다 안다.
어느날 누구의 잔치날인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우연히 술떡을 먹어 보게 되었다.
특이한 향과 함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참 좋았다.
그래서 왜 그런 떡을 못 먹게 하셨을까를 의심해 본적은 있다.
지금은 증편이라는 그 떡을 아주 즐겨먹지만...
나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술병을 만져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술이라는 종류를 마셔보거나, 냄새를 맡아 보거나, 자세히 본 적도 없다.
물론 예외는 있다. 교회의 성례식 때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입교교인이 되었다. 교회에서 행하는 입교예식은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들이 커서 자신의 의지로 교인이 되겠다고 서약하는 예식이다.
이 예식을 통과하면 성례식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내가 입교교인이 된 이후에 성례식에 쓰이는 포도주를 마셔보았는데
그 몇 번의 경험을 음주의 범위에 넣을 수는 없다.
나에게 그것은 술이 아니라 하나의 예식일 뿐이다.
지금은 건강상의 이유로 혹은 친구들과 어울려 이런저런 술들을 마시기는 하지만 즐기지는 않는다.
또 한 가지... 난 아직 화투를 잘 모른다.
고스톱이라고 하나... 우리 집에는 그 흔한 화투 한 장이 없었다.
난 다리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친척집이나 친구집을 잘 다니지 않아서
화투놀이 문화에 더욱 접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이것도 예외가 있었다. 서양카드는 통과였다. 아니 오히려 권장하는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랑 트럼프놀이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카드 뒤집어서 숫자 맞추기... 변형된 세븐브릿지 정도였지만...
이런 이유로 우리집 남자 형제들은 카드에 강한 것 같다.
화투만 도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서양카드도 도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하셨던 아버지...
트럼프놀이는 아이들의 머리를 개발한다고 믿으셨던 그 단순한 아버지가 그립다.
그리고 이쯤에서... ㅎ...ㅎ...
음주와 화투놀이를 빼고 무슨 재미로 살고 있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변명할 말은 없지만
‘얘들아!... 난 나대로 살아가는 재미가 있단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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