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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도토리선생님 - 장애인의 날에 대한 단상

truehjh 2010. 1. 18. 11:44

장애인의 날에 대한 단상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420투쟁에 관한 뉴스를 접하니 얼마 전 장애인의 날에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우리 집 저녁 식탁에서의 대화다. 식구들 모두 함께 식사를 하는 중에 TV 뉴스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일곱 살 난 꼬마 조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도토리... 오늘이 장애인의 날인데... 고모에게 꽃이나 선물 같은 거 안 주니?"
그렇게 묻고 나니 조금 더 억지를 부려보고 싶은 마음이 발동했다.
"너는 어린이날마다 선물 받잖아...”
그 말을 들은 아이는 거의 울상이 되면서 대답했다.
“고모... 미안해... 선물 주는 날인지 몰랐어...”
그런데 이렇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의 아빠인 나의 남동생이 분위기를 깨며 하는 말,
“뭐, 고모가 장애인이냐?”며 제 딸의 편을 든다. 어린 조카가 이해하는 장애인과 나의 남동생이 말하는 장애인은 개념의 차이가 있다. 조카가 말하는 장애인은 개인적으로 고모의 몸에 나타난 현상일 테고, 동생이 말하는 장애인은 누나의 사회적인 능력면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어린 조카는 ‘우리 고모는 장애인이야...’라고 스스럼없이 친구들에게 소개하곤 한다. 마치 고모의 장점이나 고모가 가지고 있는 대단한 장기 한 가지를 자랑하듯이 말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아이들, 보이는 대로 생각하는 아이들, 어떤 통념에 아직은 물들지 않은 아이들에게서는 인간에 대한 열린 마음이 보인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가 어떤 차별이나 서열로 보이는 것이 아니고, 그냥 하나의 개성이거나 특성으로 보이는 것이다. 자기들이 아직 어른이 아니고 아이들이라는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비장애인이 아니고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자기들이 어린이날에 선물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차이로 보이는 장애를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차이가 무엇인지 그 사전적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차이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아니 어쩌면 그리 깊게 생각해 볼 이유조차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차이(difference)는 차별(discrimination)과 다르다는 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차이로 인해 심각한 차별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더더욱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다수의 타인들과 조금 다른 점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차이가 차별로 경험되는 순간이 있다. 비단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뿐만이 아니다. 학문이면 학문, 운동이면 운동, 예술이면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다. 간소한 차이가 차별을 유발하는 경우는 아주 많아서 차이로 인해 차별당하는 예는 허다하다.


이렇듯 위험하고도 섬세한 다름 즉 차이에 대한 느낌들을 표현해 보려면 차이와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평소에 나는 ‘소수자, 비주류, 주변인에 관하여 관심과 애정이 많다’라고 생각해 왔는데, 다양한 모습의 차이를 만나면서 그 생각 자체가 편견이라는 것을 느끼곤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틀이 견고하여서 차이를 만날 때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것은 감수성이 개발되어 있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차이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지 않으면 무심하게 차별로 이어지는 사고를 하게 된다. 그래서 차이가 차별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 차이로 인해 다양함이 존재할 수 있게 되고 그 다양함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세상, 차별과 서열이 아닌 그냥 차이와 개성으로 존재할 수 있어서 평화로운 세상, 그런 평등한 사회가 과연 인간사회에서 만들어질 수 있을까를 깊이 의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