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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생애비혼자의 Single Life - 비혼의 삶

truehjh 2016. 11. 29. 18:42

비혼의 삶

 

미혼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이고, 비혼은 결혼할 의지가 없는 상태이고, 독신(獨身)은 배우자가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굳이 의미상의 차이를 살펴보자면, 비혼은 미혼보다 주체적인 말이고, 독신은 혼자임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비혼이란 말에는 결혼을 인생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적 단계라기보다는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어서 젊은이들은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 요즘은 다양한 삶의 형태가 받아들여지는 시대이기 때문에, 비혼의 삶은 혼자라서 힘들고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혼자라서 즐겁고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비혼이 빈번하게 회자되고 있는 최근과는 달리,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의 한국 사회에서는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은 비혼의 삶은 그리 흔한 삶의 형태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다수가 선택하는 길을 거스르는 비혼의 삶은 생각보다 위험했다. 사회가 내린 통념이나 기준에서 벗어난 생활방식이었기 때문에 혼인 가족 중심의 제도로 인해 비혼이 보호받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고, 비혼자에 대한 차별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어서 알아채기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일일이 구체적으로 나열하기조차 힘든 사회적 불평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편견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결혼제도와 연관된 가족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늘 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거나, 아플 때 돌봐 줄 사람도 없을 것이며, 홀로 늙어 방 안에서 고독하게 죽어갈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통해 비혼의 비극적 미래를 강조하며 오히려 결혼을 강요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그것마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상황이었다고 하면 피해망상에 속한다고 비난을 받게 될까. 아니면 비겁한 변명이라고 비웃음을 사게 될까.

 

비혼과 관련된 연구들은 비혼의 원인을 주로 사회 구조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비혼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약간은 모질게 느껴지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내하면서 비혼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가 여럿 있다. 그중의 하나는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조건이었다. 장애인이라는 현실이 나의 삶을 비혼자로 규정했다고 우기며, 스스로 억울해하며 살았다. 장애로 인한 차별과 무시를 극복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 쓰며 살았기 때문에 사랑이나 결혼, 그리고 가정을 이루는 과정은 나와는 거리가 먼 꿈같은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장애라는 조건을 가지고도 행복한 결혼을 유지하고 사는 친구들도 주변에 많다. 그러니 나에겐 억울해할 명분도 없고, 억울해해도 될 당위성도 없다.

 

내가 생애비혼자로 살고 있는 것은 단지 나의 선택이었다고 치부해 두고자 한다. 강요된 선택일지라도 나 스스로 결정한 것은 분명하다. 결정이 주도적이었든 수동적이었든 내가 선택한 길이었으므로 이제 와서 이러쿵저러쿵 왈가왈부해 보았자 아무런 위로도 변명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나의 삶을 살아 낼 수 없었다는 핑계를 만들고 싶어서 이런다고 해 두어야겠다. 비혼으로 사는 것이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사회적 편견에 동의한 것과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혼자 살 때 빈번하게 발생하는 편견이나 거추장스러움을 조금이라도 피해가기 위해 발버둥 쳤고, 결과적으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는 생활방식으로 살아오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비혼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포괄적 의미로는 비혼의 삶이지만, 실제로는 독신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그러나 혼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육십 년 이상 살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혼자 산 적이 별로 없다. 태어나서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 때까지는 부모님 집에서 부모 형제와 함께 살았고, 약국을 운영할 때는 약국을 도와주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다. 미국에 머물 때는 친구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했고, 돌아와서는 남동생 집에서 엄마와 함께 살았다. 일터 때문에 잠시 혼자 생활했던 기간을 빼고는, 아직도 동생 가족과 한 지붕 아래서 살고 있다. 가족 구성원들과 사랑을 나누며 사는 공동생활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사실은 얹혀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