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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생애비혼자의 Single Life - 독립일지(2) : 어디에서 살 것인가...

truehjh 2017. 11. 24. 00:19

 

어디에서 살 것인가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지금은 홀로라는 결론이 나왔다. 함께 살아갈 친구나 동료를 찾거나 만들 수 없었다. 아쉽게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혼자였는데 갑자기 둘 이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욕망일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은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결정할 차례다. 그런데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하기가 참 어렵다. 이 넓은 세상 어디에 둥지를 틀어야 한단 말인가. 혼자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순간 어디라는 범주가 생각보다 훨씬 넓어진다. 같이 사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디라는 장소를 특정하기가 좀 쉬워지지 않을까. 그 누구 때문에 어느 정도 범주가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 사는 것이라면 제한이 없으니 아무 곳이나 가서 살아도 될 것 같다. 특정한 곳이어야 하는 근거나 연고로 삼을 중심이 없다는 말이다.

 

남아있는 삶을 어디에서 살아내야 한다는 말인가. 고향이라는 곳도, 부모가 계시는 곳도, 추억이 깊은 곳도 없다. 아니 그런 곳이 있다 하더라도 남은 삶의 근거지로 삼기에는 동력이 약하다. 형제자매 또는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가 사는 근처에서 내가 살 곳을 찾아보는 것보다 아플 때 찾아가는 병원이 가까운 곳, 운동하러 다니는 스포츠센터가 가까운 곳 등을 찾아보는 것이 차라리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디를 근거로 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중심으로 거리를 계산해야 하는지, 그 기준이 생기지 않아 막연하기만 하다. 젊었다면 직장이나 일터를 근거 삼아 결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지만 지금은 정서적인 도움과 안전, 그리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편리함을 고려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그렇다고 연결고리 없는 아무 곳에서나 살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가지 염두에 두고 있는 사항은 있다. 동생의 활동 범위 안에 있는 곳이면서도 독립적일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정서적으로 큰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으면 좋겠고, 집 주변을 휠체어 위주의 동선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수월할 곳이었으면 더 좋겠다. 이런 중요한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경제적인 조건에 맞춰본다면 영태리가 딱이다. 형제간의 우애와 의리를 지키기 쉬운 거리, 멀리 사는 친구들과 왕래하며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인 것 같다. 경제생활을 꾸려가기 위한 방법이라든지, 위급상태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등에 대한 대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세워야겠다. 그리고 닥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다음 단계에 대한 모색도 필요하다. 코끼리는 자신의 죽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모가 죽은 곳을 찾아간다고 하는데, 나는 영태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도 될까. 혼자 거동할 수 없고, 일신상의 처리가 불가능해져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옮겨야 하는 순간까지는 그렇게 쭈욱 거기서 살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게 길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내가 운전해서 다닐 수 있는 지금과 아주 가까운 미래만을 생각하자. 영태리 집을 잠깐 거쳐 가는 숙소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얼마 동안 살다가 내 몸에 맞는 또 다른 곳으로 근거지를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으며 노후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도서관 옆에 가서 살겠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깃든 곳을 떠나지 못하겠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나이 들어 부모가 살던 고향을 찾아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자연을 즐기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한다. 나는 교회 옆으로 가고 싶다. 자그마한 마을에 예쁜 교회당 옆에서 살고 싶다. 틈이 나면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서 기도드리고, 흥얼흥얼 찬송도 부르고, 햇볕 따스한 창가 의자에 앉아 성경을 읽으면서 그렇게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 멋진 꿈 아닌가. 꿈으로만 그치지 않고 현실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나의 최종 주거지는 걸어서 예배드리러 갈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