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생일일기

_ 스물여섯 번째 생일

truehjh 2013. 3. 22. 22:13

 

1981.03.17

 

15일의 이야기를 대충 적어 놓고 싶다.

<장호>에서 4시에 Y를 만났다. 넥타이를 매고 양복차림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를 대하고 난 조용히 웃었다. 바람이 무척 많이 부는 날이었다. 그리고 도 추웠다. 그는 콧노래로 My Sweet Lady를 계속 불렀다. 6시간동안 나는 끈질긴 인내로 버텼다. 결론을 유도해야 한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훌륭한 남편감도 될 수 있음을 느꼈고 똑똑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와 연관지어 생각한 것은 전혀 아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의 판단이다.

나는 그를 통해 나의 본모습을 보았다. 오랫동안 그와의 연결점들을 통해 나는 念이 아닌 현실의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지난 어린시절 교만하고 오만했던 내 사고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약점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눈 나쁜 사람이 안경을 끼는 것과 다름없다고 나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며 억지를 쓰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나는 모든 것을 인정하겠다. 구태여 부정하려고 안간힘을 써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이제는.

자유스럽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곧 이런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충돌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가 의도적이었건 의도적이 아니었건 간에 난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고, 고마움도 함께 전하고 싶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일 수밖에 없는데...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정희는 선택받아야 하는 여자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군” 라고 하며 안쓰러워했다. 그는 자신은 절제할 수 있도록 원숙해 있으며 나에게 더 이상 고통을 주지 않겠다고도 했다.

나는 추위에 떨고, 초조에 떨고, 고통에 떨고 있어서 그가 침착하게 들려주는 자상한 말들을 잘 듣지 못했다. 그리고 헤어졌다. 침착하지 못한 걸음으로 내가 먼저 걸어 나왔다. 이전에 있었던 모든 헤어짐이 주었던 고통, 그 끈끈한 여운들은 무척 많은 시간의 소모를 요구했지만 마지막 헤어짐은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아주 메마른 슬픔이었고, 많은 번민을 동반한 그 순간을 보낸 후엔 마음의 평정을 허락해 주었다. 또 다시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고, 내 초라한 양면성을 다시는 기억지 않을 것이다. 念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이제 어떤 진실한 남자를 만나면 진정으로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부터 사념을 버리고 열심히 공부하자. 열심히 공부하자. 주님, 인도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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