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미국행을 통한 회심 : 그녀의 죽음이 남긴 원망과 분노로부터의 자유
두 번째 미국행을 시도하려고 계획 중이던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다가왔다. 26년 만이었다. 물론 26년 전에도 우리는 가깝게 서있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같은 의과대학에 목표를 두고 있던 같은 반 학생이었을 뿐이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원하던 의대에 그녀가 입학했었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혀져 가던 때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와 나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 보다. 아니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수밖에 없었나보다. 나의 힘이 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알지도 못하는 다른 곳에서 그녀의 삶이 진행되다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적당한 때에 우리를 다시 서로의 파장 안으로 들어서게 만드셨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의대에 가서 내가 원하던 삶을 그대로 살고 있었고, 나는 의대에서 거절당하고 좌절된 꿈을 되씹으며 이리저리 방황하며 살고 있던 시절에 우리가 다시 연결이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우리는 몇 번을 더 만났다. 그가 근무하는 병원으로도 가고, 우리 집이 있는 곳으로도 왔다. 서울 한 복판에서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동창회도 가고, 연극도 같이 갔다. 나에게 영향을 끼쳤던 선생님들과도 같이 만나도록 주선하고, 내가 다니고 있던 화실에도 찾아왔다. 미국행의 계획을 듣고는 영어도 같이 공부하자고 했다.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정신과의사였지만 삶에 대한 진지함으로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오래된 친구처럼 또한 엄마천사처럼 내 분노와 원망의 세월들을 들어주었다. 장애로 인해 꿈을 이룰 수 없다고 원망하며 분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냥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던 나를 보듬어 주었다. 나는 거절의 경험을 통해서 장애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장애인으로서의 정체감이 곤고하게 형성되어 있다고, 장애에 대한 억울함, 분노는 내 삶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의 원천이라고, 나는 그 분노를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노라고 투정했다. 사실 이러한 나의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조용한 반항이었으며 그분에 대한 드러나지 않은 원망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던 시기에 그녀의 죽음 소식이 전화로 전해졌다. 불과 몇 달 전에 김포공항으로 나와서 미국으로 가는 나를 배웅하던 그녀가, 비행기 안에서 심심할 때 먹으라고 빵 몇 조각을 가방에 넣어 주던 그녀가, 잘 도착했냐고 전화를 주던 그녀가, 여고동창회의 LA모임을 수소문해 주면서 선생님을 만나보라던 그녀가, 갑자기 의식을 잃은 채 중환자실로 들어가 유명을 달리 했다는 것이다. 사인은 척추암이었단다. 중환자실에서 간간히 의식을 찾기는 했다지만 그렇게 급하게 세상을 떠나버렸단다. 아직 젊고 할일이 많은 정신과 의사이며 두 아이의 엄마이며 유능한 교수의 부인으로 살던 그녀가 그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 두고 갔단다.
오렌지카운티의 조용한 아파트에서 전해들은 그녀의 죽음 소식은 내 머리와 가슴을 온통 전율에 휩싸이게 했다. 그 순간 나는 번개를 맞은 것 같이 가슴이 아파서 큰소리로 울었다. 그녀의 죽음 자체가 주는 충격보다 더 크게 만남과 헤어짐을 주도하신 하나님의 강력한 손길을 느꼈기 때문이다.
회심이란 천둥번개 치는 밤에 일어나는 사건만이 아니다. 미풍이 불고 따스한 기온이 감도는 아침햇살 아래에서도 회심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은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내 마음을 요동하게 만드셨고, 급기야는 내가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끌고 가셨다.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이끄시는 시간의 움직임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건들 속에 내 삶이 움직여지고 있었고, 그리고 결국에는 그녀의 죽음을 통한 회심의 사건에 내가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죽음은 내 아픈 시절의 종결이어야 했다. 내 과거의 종결이 그녀의 죽음을 통해서라도 이루어져야만 했다. 나는 그 사건을 통해 꿈의 좌절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장애 때문이었다는 분노를 내려놓았다. 장애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슬플 수밖에 없다는 푸념을 집어치웠다. 그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조용한 반항은 끝이 났다.
지금의 시작은 언제 부터였을까... 또한 내일은 언제부터여야 할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던 날, 새천년이 시작되고 나라가 탄생하던 날, 엄마와 아버지가 만나던 날, 아니면 내가 태어나던 날, 그것도 아니면 돌이 겨우 지난 아이가 열병을 앓고 나더니 걸음마를 하던 그 앙징맞은 다리를 떼지 못하고 주저앉던 날... 아니다. 모두 아니다. 내가 나를 거부하고 내가 아닌 나로 살기로 조용히 다짐하던 날부터 지금은 시작되었다. 장애로 인해 거절당하던 그날... 과거로부터 시작된 그날이 나에게 있어서 지금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제 미래를 향해 시작되는 지금을 살기로 했다.
나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은 나를 도피의 과정에서 수용의 과정으로 불러 세워 주셨다. 회심의 그날에 새로운 지금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가 회심한 날... 그날로부터 내일이 내게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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