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31
어제 저녁에 먹고 잔 진통제 덕분인지, 긴장감 덕분인지 아침에 무리 없이 일어났다.
팔다리가 뻑쩍찌근할 정도... 이 정도는 인내심 많은 장애인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상황... ㅋ..ㅋ.. 오늘은 보드룸성으로 가야 하니까 나의 팔다리에 동정심을 보내면 안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터키의 호텔식이라는 아침식사가 육체의 에너지를 충전시키기에는 좀 부실하다... 하지만 어쩌랴... 내 입맛에 맞는 것이라고는 삶은 달걀과 빵과 또 다른 빵과... 그리고 또 빵^^...
오전 5시 기상... 6시 식사... 7시 출발...
쿠사다시에 있는 호텔에서 보드룸까지는 세 시간 정도 걸린단다. 이동하는 중간에 가죽제품 파는 곳으로 인도되었다. 양가죽으로 만든 옷들을 판매하는 곳인데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패션쇼 비스므레한 쇼를 하면서 광고작업에 나선다. 여행 중에 무대가 있는 공연장에서 차이(터키차)를 마시며 패션쇼를 관람하게 된 것이다. 우리팀에서 선발된 모델들은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즐거워한다. 아침부터 쇼핑이라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맘에 드는 자켓 하나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으이그... 그리고... 저질렀다... 여행 중에 물건을 사면 후회한다는데...ㅠ... ㅠ... 나도 늙었나보다. 15살 된 조카의 말에 의하면 고모가 저지르는 것을 보는 것은 자기 일생에서 처음이란다. 자신의 일생이라고 해보았자 고작 15년... ㅎ...ㅎ... 그전에 내가 인생공부 값으로 저지른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녀는 알 수가 없겠지...
나도 저지르곤 하던 사람이란다^^...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버스를 탔다. 한 시간 정도 가더니 다시 휴게소에 들려야 한단다. 여행 중에 휴게소에 몇 번 들렀는데 아마도 운전기사와 연결이 되어 있는 듯하다. 거기서 세차를 하는 동안에 사람들은 화장실을 가고, 음료수를 사먹고, 마음에 드는 기념품들은 산다. 사진 찍으며 쉬어가기에 적당한 멋진 휴게소다.
조금만 더 가면 유럽인들의 최고의 휴양지이며, 터키의 산토리니라고 불리는 보드룸에 도착한다.
거의 다 온 모양이다. 지중해가 보이고 예쁜 집들이 나타났다. 한얀 집들이 모여 있는 휴양지풍경을 멀리서 보면 마치 레고로 만든 장난감 나라 같았다.
점심 식사를 하러 들어간 레스토랑은 수영장을 갖추고 있었다.
휴양지에 온 사람들은 여기서 식사 하고, 썬텐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식사내용은 어디를 가나 거의 비슷하다. 빵, 스프, 야채샐러드, 본 요리와 음료는 물... 점점 음식이 매력 없어진다. 사실 터키여행을 준비하면서 음식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다. 우리 음식 맛과 비슷하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키음식들은 특이한 향과 내용물이 다를 뿐이지 좀 단조롭다. 이국의 멋진 레스토랑에서 우리 음식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버스는 보드룸성 앞까지 갈 수 없단다.
전용버스에서 내려 20분 정도 바쁘게 걸어야 보드룸성 입구까지 간다는데, 그렇다면 내걸음으로는 빨라도 1.5배... 그러니까 30여분을 더 걸어야 하니 다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는다. 여기 건널목은 신호등 바뀌는 시간이 너무 짧다. 가이드는 나에게 앞으로 나와 있으란다. 터키사람들도 그렇게 한단다. 여기까지 와서 도로교통법을 어기라니... 좋다... 그래... 해보자. 그래야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건너편으로 갈 수 있겠지... 마음을 단단히 먹자... 그런데 또 한가지 걸림돌은 길바닥이 모두 대리석이라는 점이다. 미끄러질까봐 대리석만 보면서 조심스럽게 하지만 급히 걸었다. 길가에 어떤 상점이 있는지, 무엇을 파는지, 사람들의 표정은 어떤지 구경도 못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일행들을 많이 기다리게 할까봐... 그들의 시간을 축내게 될까봐...
보드룸 해변은
거니는 사람들... 하얀집과 요트들... 북적거리는 레스토랑들로 휴양지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보드룸성은 15세기 십자군이 건설한 성이다. 십자군은 이곳을 침략한 후 마우솔루스의 묘에 있는 석재를 가져다 이 성을 쌓았다고 한다. 이 많은 돌들을 운반해온 방법도 궁금하지만... 도데체 얼마나 큰 무덤이었을까를 상상하며 성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돌들로 쌓여진 성곽은 군사요새로써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숨차게 성의 입구까지 걸어 왔는데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봐야하지 않겠나... 하지만 성안을 돌아보는 거리도 만만치는 않다. 빙글 도는 계단을 조금 올라가... 무슨 다리 같은 것을 지나... 또 계단을 올라가야... 그 다음에 성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러니까 요새지... ㅎ...ㅎ...
성으로 들어가 보니 앞바다에 잠겨있던 배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마당이 있었다.
그 정원 벤치에 혼자 앉아 쉬면서 동생식구들이 올라갔다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둘러보니 커다란 정원 주변에는 채플도 있고, 우물도 있고, 부엌도 있고, 여러모로 구획된 장소가 많았다. 갑자기 어미공작새와 아기공작새가 마중을 나온다. 아유 귀여워... 내가 오는 줄을 어떻게 알고...ㅎ..ㅎ..
채플 안이 궁금해서 열려진 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또 다른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해변의 요새여서인지 배와 관련된 유물들이 많다. 유리 바닥 밑에도 뾰족한 항아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배에서 쓴던 물건이라서 밑이 뾰족하단다. 거친 풍랑에도 쓰러지지 말고 제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라고 고안된 것이겠지... 에어컨바람도 나왔다... 하지만 오래 있기에는 너무 좁았다. 사람들도 많이 들락거리고...
탑으로 살살 올라가 보았다.
맨 꼭대기 까지는 올라가지 못했다. 중간에서 동생식구들을 만나 사진을 찍으며 다시 내려왔다.
우리가족은 일찍 보드룸성에서 나왔다.
길가 카페에서 돈두르마라는 쫀득쫀득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레모네이드 냉차도 사서 마시면서 천천히 걸어 집합장소로 갔다.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왔다. 남들보다 성에서 먼저 나왔으니까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여유다... 이리저리 거리를 둘러보고 사람들 구경도 했다. 구시가지를 관람한 마지막 팀이 도착하였을 때 우리는 다시 버스 주차장을 향해 걸었다. 늦게 도착해서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뜨거운 태양 아래의 대리석 길을 또 걸었다. 아까 걸어왔던 대리석 길이라 조금 익숙해졌지만 역시 미끄러웠다. 입에서, 머리에서 뜨거운 김이 나온다. 이렇게 2시간 반이 넘게 지나갔다.
이제 파묵깔레로 이동한다. 버스로 4시간 정도 가면 도착할 예정이다.
길이 기획적으로 잘 뚫린 느낌이 든다.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업적이란다. 길옆으로 군데 군데 집들이 있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길이다. 여기도 빨간 지붕에 하얀벽을 가진 집들이 대부분이다. 차창 밖의 햇볕은 강열하다. 그 아래 끝없는 목화밭... 꽃이 필 때쯤이면 하얀 벌판이 된단다. 그 길을 2시간쯤 달리고 휴게소에 들렸다가 또 한참을 달려갔다.
파묵갈레 가까이 들어섰는지 창밖 풍경이 변한다.
돌산이 펼쳐지고 손오공이 튀어나올 듯한 돌 위의 돌... 높은 해발의 호수 또는 댐... 지루한 이동시간에 변화되는 풍경으로 조금은 활기가 돈다. 좀 더 가니 멀리 보이는 석회층...
호텔로 들어가는 시골마을 풍경도 재미있었다.
굴뚝 위에 유리병들이 몇 개씩 올려져 있는 집은 결혼 안한 처녀가 유리병 수만큼 있다는 광고란다. 길거리 카페에는 남자들만 있다.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남자들뿐이며 시골마을의 카페나 길거리에서는 여자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런 시골 마을에서도 15분을 더 지나 호텔로 들어갔다.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물을 끓였다. 믹스된 봉지커피가 너무 너무 마시고 싶었다.
일단 한모금이라도 마시고 나야... 식당으로 가는 나의 다리가 움직이려 할 것이고... 그곳까지는 걸어가야 호텔식부페라는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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