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There/터키(2013)

[2013 보행장애인의 터키여행] 사도바울의 편지 에베소서가 보내진 에페소

truehjh 2013. 8. 13. 00:42

2013.07.30

 

첫 번째로 향하는 도시가 에페소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성경에서 수없이 읽었고, 설교에서 수없이 들었던 바울의 편지 에베소서가 보내진 곳이 바로 에페소에 있는 교회가 아닌가... BC 620년경 이곳에 세워진 아르테미스신전은 소아시아에서 그리스에 이르는 많은 순례자들을 모았으며, 헬레니즘시대에 다시 부흥하여 황금기를 누렸고, 1세기경 바울이 이곳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곳으로 사도 요한이 예수의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까지도 많은 유적이 발굴되고 있는 고대도시 에페소다.


이즈밀 공항에서 에페소로 떠나는 전용버스에 짐을 실키 전에 커다란 가방에서 스틱과 모자를 꺼냈다.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한 후에 가이드에게 에페소 관광방식을 살짝 물어보았다. 그런데 남쪽 입구에서 출발해 북쪽 입구로 나간다는 것이다.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어서 버스 내린 곳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단다. 자신이 설명하는 포인트마다 시간이 지체될 테니까 찬찬히 따라오라는 귀뜸... 마음 속으로는 무지하게 걱정이 되었지만 별문제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멀리서라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리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이제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다. 그 길을 가야하니까...ㅎ... ㅎ...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가면 에게해 최대 유적지 에페소에 도착이다.

창밖 풍경의 첫 느낌은 넓은 땅과 먼 산의 무심한 평화로움이다. 길 옆이나 산에 보이는 희끗희끗한 나무들은 모두 올리브나무란다. 지중해기후에서 잘 자라는 올리브나무들.... 모든 나무가 올리브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다. 집들이 모여 있는 작은 동네를 지날 때마다 한두개의 모스크와 미나레가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 시골동네에 작은 교회와 종탑이 있는 것처럼...  

 

에페소에 도착해서 얼굴에는 썬크림을 바르고, 마음으로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에 버스에서 내렸다.

관광지라는 느낌이 확연하다. 손님을 끄는 상인들과 여행객을 위한 상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양손에 스틱을 잡고, 물병이 든 가방을 메고, 드디어 나는 고대도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티켓을 체크하고 들어가 입구의 나무그늘에 모여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왼쪽으로는 정치아고라가 있었던 자리고 건너편에는 공중목욕탕이 있었던 곳이라고 하는데 마음 편히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갈 수 있는 곳만 걷기로 결단을 내린 내가 뿌듯하다... 수도시설, 공중화장실, 체육관, 원형극장 등을 갖춘 고대 로마도시 에페스는 융성했던 항구도시였는데 물이 범람해서 무역항 기능을 상실하고, 습지대가 되어 사람들이 떠나고, 지진이 일어나서 3m 밑에 고스란히 뭍혀 있었단다.

 

공중목욕탕에서 입구 가까운 쪽에는 다른 어느 나라 말의 설명이 아닌 한글설명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터키라는 나라가 허락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길바닥이 흙과 자갈이어서 조심스럽게 10분정도 이동했다.

여기까지는 평지였지만 다음부터는 대리석이 깔린 길이고 곳곳에 층계가 있어 휠체어가 접근하기는 어려운 길이다. 어딘가에 따로 마련해둔 길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저 이 길에서 보이는 것만 보리라... 더이상 알아내려고 욕심을 내면 내가 다친다...ㅎ..ㅎ... 나는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오데이온이라는 공연장으로 갔다. 집회장소이자 콘써트나 강연 등의 목적으로 사용된 소극장이란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열심히 살펴보다가 돌계단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걸었다.

내가 걷고 있는 길 위의 기둥과 대리석으로 꾸며진 거리 주변의 모두가 신전이며 모두가 기념비다.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 다산과 풍요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바쳐진 신전, 승리의 여신 니케아상, 또 누구 누구... 거의 기억을 할 수 없다. 잘못 기억해도 괜찮다. 시험을 볼 것도 아니고... 정확한 명칭이나 역사적 배경은 사전을 찾아보면 다 있을 것이고... 나는 내 느낌이나 적어 보련다. 위대했던 인간을 기념해서 세웠다가 다시 허물고, 또 다른 누군가를 기념하고... 그곳에 바다가 범람하고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드러나고... 2000년대의 내가 방문하고 2000년 후에 누군가가 또 방문할 이 신비한 시간 그리고 역사...

 

 

 

 

 

 

 

그 당시 수세식 공중화장실도 가보았다.

50개의 대리석 변기가 있었다는데 좌변기 앞으로는 수로가 있었으며, 귀족이 내는 생리현상소리를 커버하기 위해 그들 앞에서 악단이 악기를 연주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 웃었다. 현대음악의 시조가 그것인가?


 

한 시간 이상 걸으면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다보니 저 아래로 멋진 건축물이 보인다.

에페소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로 꼽히는 웅장한 기념물 셀수스 도서관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발을 딛고 내려가고 있는 대리석 길이 크레테스 도로란다. 사제들의 거리를 모두 대리석으로 깔아 놓았는데 너무 맨질맨질해서 위험한 길이며 곳곳에 계단도 많아 조심조심 걸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전면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덟 개의 기둥 사이에는 학문의 목적인 지혜, 미덕, 지성, 지식을 상징하는 석상이 남겨져 있다. 이 화려한 로마의 유적을 보면서 대리석의 풍요로움, 대리석을 사용할 줄 아는 그들의 멋도 들여다보았다. 

 

 

 

 

엄청난 크기의 이 도서관 건너편에 유곽이 있었다니 인간의 행동양식이 참 아이러니컬하다.

도서관을 나와 왼쪽으로 돌면 가슴이 24개 달린 아르테미스여신상을 볼 수 있고, 좀 더 가면 양 옆으로 커다란 기둥들이 사열하고 있는 상업아고라를 만날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원형대극장이다.

성경에서... 은장색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수입을 줄어드게 하였다고 사도바울을 향하여 데모(?)를 일으켰던 곳이라고 하는... 2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3층 규모의 아시아 최대의 그리스로마형 극장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원형극장 앞에서 머물러야 했다. 그곳까지 걸어 들어가는 것은 무리다. 눈에 보이는 나무 그늘에 앉았다. 시원한 바람과 파란 하늘과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원형극장 앞에서... 내가 오늘 걷기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동생가족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즈밀 공항에서 버스로 이동하는데 실지로 주저앉고 싶었었다.

오늘 걸을 양을 두개의 공항에서 다 걷고 말았다. 누군가의 의미심장한 미소처럼 아직도 장애인의식이 부족한 나를 자책하기도 했지만... 붉어진 하얀 피부들 틈에서 고대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이 군중들 속의 한사람이었음에 깊이 감사한 마음이 솟구쳤다. 두개의 스틱에 의지해 걷다가 쉬다가 앉았다가 하면서 거의 두시간 동안 걸었다. 다리 하나로 걸어야함을 세 개가 대신해서 걸어주니 모양새나 양 팔의 통증이 문제가 안 되었다. 정말 여기까지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단지 두 손이 자유롭지 못하여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하나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우치는 시간이었다. 틈틈이 찍은 사진들과 수집한 사진들을 정확하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진안의 기둥과 신전들이, 그리고 건물들이, 대리석들이 무엇이었는가에 치중하지 않겠다. 내가 그 길을 걸어보고, 만져보고, 앉아보고, 내 눈으로 확인하고 느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에페스는 로마보다 또한 그리스보다 더 많은 유적지를 가지고 있으며, 아직도 1/3 정도밖에 발굴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직 발굴 중인 유적지의 둥근 기둥들을 뒤로 하고 소나무 숲의 거리로 들어섰다. 바람이 솔솔 분다. 상쾌하다!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북문으로 나오니 역시 상가들의 호객행위가 이어진다.

한국말을 외워서 사용하는 상인들도 있다. 관광명소다운 분위기다. 버스에 올라 시원한 물을 사서 꿀꺽꿀꺽 마셨다. 이제 쉬린제 마을로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