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아버지를위한노래

3-02) 응급실과 중환자실

truehjh 2014. 2. 28. 22:37

3-02. 응급실과 중환자실

    

그제는(8.30.일) 사촌형님 생신이라 정훈엄마랑 같이 집을 나서는데 오른 발에 힘이 없어 자꾸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힘을 내어 발걸음을 옮겼지만 걸음걸이가 몹시 불편했다. 형님 댁에 도착했을 때는 힘이 다 빠져서 눕고만 싶었다. 그래도 연세 많으신 형님 앞에서 힘없이 앉아 있는 것이 예절이 아닌지라 반가운 이야기를 끄집어내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형수님이 주시는 청심원을 먹고 잠시 누워 있다가 생신축하도 제대로 못해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진땀이 나는 하루였다.

 

생신날에 먹은 것도 별로 없었는데 어제는 배가 좀 아팠다. 아랫배가 단단해진 것 같아 화장실을 몇 번 들락거리며, 관장도 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이 들었고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내 몸이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뭔가 좀 다른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병원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정훈엄마가 병원에 가자고 하는데 안 가겠다고 괜스레 신경질을 좀 냈다.

 

오늘(9.3.목) 아침에 잠에서 깨어 침대 옆에 놓아둔 물을 찾았다. 움직이려 하니 한 쪽 발과 팔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겨우 움직여지는 왼손으로 물 컵을 잡고 반 모금을 입에 물었다. 물을 넘기려 하는데 삼킬 수가 없었다. 목으로 넘어가지 않은 물은 입술 사이로 흘러내린다. 옆에 누워있는 정훈 엄마를 불렀다.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말을 하려해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다시 왼손으로 정훈엄마를 흔들었다. 나의 상황을 알아차린 정훈엄마는 출근하려는 정훈이를 불러 세웠다. 놀란 큰아이는 나를 업고 집안을 나섰다. 정훈이의 등에 업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정훈엄마와 큰며느리가 뒤따라 나오며 허둥지둥한다. 나로 인해 당황한 아들이 급하게 운전을 할까봐 조바심이 났지만 하나님께 맡겼다.

 

우리는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의 환자들은 저마다 고통스럽다고 야단이고 보호자들도 모두 정신이 없어 보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큰 고통이다. 아무리 노력해 봐도 입 속에서 소리되어 나오지 않으니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언어마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그냥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혈압을 재고, 체온을 재고, 채혈을 하고, 소변을 받고, 사진을 찍고, 주사를 주고, 뭐 야단법석이다. 저 의사들은 나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 고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다는 말인가... 어떤 검사와 어떤 치료로 또 나를 괴롭게 할 것인가.

 

시간이 꽤 흘러갔다. 큰며느리와 작은아들이 왔다갔다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중환자실이다.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고 나를 포함한 중증의 환자들과 가운을 입은 간호사들만 있다. 또 얼마 후 눈을 떠보니 정훈엄마가 있었다. 수건을 가지고 와서 얼굴을 닦아주고 치아를 닦아준다.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지만 면회시간마다 식구들과 친지들이 왔다 간다. 그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위로한다. 나도 눈물 외에는 나의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

 

어느 날은 집으로 데려가라고 정훈이 손을 꽉 잡고 있었지만 그 아이는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표정이지만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이 명료해지지 않고, 어떤 약인지, 무슨 검사인지 모르겠지만 그것들로 인해 나는 점점 힘이 없어지는 것 같다. 때때로 깊은 잠에 빠지기도 했고 비몽사몽 중에 있기도 했다. 그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많은 얼굴들이 나를 찾아와 위로하고 가지만 그 현상이 꿈인 것 같기도 하다. 집으로 가고 싶다. 내 방으로 가고 싶다.

 

    

'Fact&Fiction > 아버지를위한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4) 무언의 시간  (0) 2014.03.27
3-03) 다시 아들집  (0) 2014.03.13
3-01) 여행의 시작  (0) 2014.02.25
[3부 : 무언의 시간]  (0) 2014.02.12
2-03) 그가 없는 날들  (0) 2014.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