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아버지를위한노래

3-04) 무언의 시간

truehjh 2014. 3. 27. 09:57

 

3-04. 무언의 시간

 

날짜가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주일 저녁(10.5)이라고 아이들이 다 모이고 있다. 잠시 이 방에 얼굴을 디밀고 나의 상태를 살피고는 거실로 나간다. 거실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저 아이들의 생각을 짐작할 수가 없다. 슬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했건 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부모자식간의 세대차이를 극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사위와 외손자들까지 와서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니까 대단한 결심들을 한 모양이다. 오늘은 제 엄마랑 함께 자려는지 큰딸까지 내 방에서 잘 자리를 마련하고 있구나. 지금은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욕창이 생겼나보다. 꼬리뼈 부분이 유난히 아프다. 왼쪽 팔이라도 사용해 좀 움직여 볼까. 움직여지지 않는다. 저 양반은 깊은 잠에 빠져있군. 날 좀 도와주지... 애매한 기저귀만 짖게 되는데... 날 좀 옆으로 돌려 뉘어주지... 답답한 이불을 좀 벗겨주게나... 아무 소용이 없어.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아...

 

새벽녘에(10.6) 딸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후에 잠이 들었었나보다. 아침 식사라며 쥬브에 넣을 유동식을 준비해온 아이들이 나를 깨웠다. 저 약과 음식이 위로 들어가니까 현 상태를 유지해 주고 있겠지. 정훈엄마가 내 목에 걸려있는 가래를 빼내고 음식을 주입한다. 나를 살리기 위해... 아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어떠면 그냥 해야 되니까... 모든 것을 다 알아 낼 수는 없다. 궁금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후가 되니 아이들이 야단법석이다. 침대에 비닐을 깔고 나를 씻겨 줄 모양이다. 여자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부인이나 며느리나 딸이나 다 똑 같이 어머니가 된 듯 서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의견이 분분하다. 나를 아이취급하고 있군... 그러나 어쩔 수 없지.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으니까... 눈이나 감고 있자. 머리 감고, 몸을 닦고,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니 감촉이 부드럽다. 이것이 마지막일까.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언제 부르시려는 것일까. 딸아이들 둘이 침대 곁에 앉아 찬송을 부르며 울고 있다. 나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 너무 싫다. 저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지만 어찌한단 말인가.

 

조금 전에는 나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훌륭한 의식이 행해진 것 같다. 식구들이 다 모인 가운데 깨끗한 몸으로 하나님께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코 줄을 뽑아 잘 말아서 베게 옆에 놓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이다. 하나님 나를 인도하소서... 주의 의와 지팡이가 죽음의 골짜기도 두렵지 않게 하소서... 십자가를 기억하게 하소서...

 

내가 뽑아낸 코 줄을 아이들이 또 발견했나보다. 이번에는 이상하게 아무 반응이 없다. 전 번에는 왜 뽑았느냐고 큰소리를 치더니 오늘은 모두 아무 말이 없다. 다행이다. 정희는 딸꾹질하는 내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약도 못 드시게 되었잖아요.’하며 또 운다. 딸꾹질을 자꾸 해서 그런지 힘이 없다. 졸린 것 같기도 하다.

 

추석행사가 다 끝났는지 갈 모양이다. 처음으로 식구들이 다 모여 예배를 드리겠단다. 고맙다. 저마다 최선을 다 해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벅차면서 기분이 이상하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나를 인도하소서... 찬송을 부르고 모두 기도를 드렸다. 성경말씀도 읽는다. 지난날 수없이 해오던 예식이었지만 그것이 나를 위해 지금 진행되고 있구나. 사위 목사에 의해.

 

다 갔다. 허전하다. 죽음의 공포가 나를 휩싼다. 하나님 나를 인도하소서... 숙은 며칠 동안 잠잠하다. 잔소리가 줄었다. 몇 번씩 큰소리로 찬송을 부르는가 하면 나를 위해 성경도 읽어 준다. 내 얼굴을 닦아주고, 치아를 닦아주고, 손도 씻어주고, 손톱도 깍아주고... 나는 숙의 손을 꼬옥 잡았다. 숙보다 먼저 가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혼자 남게 하는 것도 편안치는 않다. 같이 갔으면 하고 오랜 동안 바랬는데 그녀는 끔찍한 일이라고 펄쩍 뛰곤 했으니 그 소망도 바꾸었지 않은가. 그녀를 만난 것은 해방교회였다. 해방교회는 내가 월남한 후에 서울에 정착하면서 시작한 천막교회였다. 천막을 지고 올라가던 길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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