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엄마와의시간여행

60년쯤 전의 어처구니없는 사건

truehjh 2014. 7. 13. 01:30

  

나는 지금까지 왜 소아마비에 걸렸는가라는 근본적인 의구심을 품지 않고 살아왔다. 내가 장애인이므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수없는 질문에 비하면 왜 소아마비에 걸려서 장애인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는 의문조차 갖지 않았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살아가도록 한 것이라고 그냥 받아들였다. 그래서 부모를 원망하며 탓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부모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컸다. 하나님의 뜻이려니... 이것이 장애를 가진 삶을 보는 나의 견해였다.

 

성경에서 어떤 이가 보지 못하는 사람에 대하여 질문했다. 누구의 죄로 인해 못 보게 되었느냐는 질문이었다. 예수님은 누구의 탓도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씀에 크게 감동되어서 내가 왜 소아마비에 걸렸는지에 대한 의문을 키우지 않았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저러한 인간이 되었는가에 집착하는 것은 우매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내가 소아마비에 걸리는 시기에 기록된 아버지 일기의 내용을 알게 되었다. 요약해 보면, 1956년 4월 5일에는 농촌봉사와 목회의 두 길에서 갈등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엄마가 신학공부를 더 하라고 권유하시는 내용과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시는 아버지의 다짐이 기록되어있고, 4월 12일에는 아버지와 엄마와의 격한 말다툼이 있었다고 쓰여 있다. 다음날인 4월 13일에는 ‘정희가 자꾸 열이 난다’로 시작되어, 고열에 시달리다가 다시 회복되다가를 반복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6월 29일에는 병원에서 소아마비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괴로워하는 부모의 심정이 가득히 기록되어 있다.

 

일기에 의하면 내가 열이 나기 시작한 바로 전날에 나의 부모가 격한 말다툼을 하셨다고 한다. 무슨 내용인지가 궁금하던 차에, 오늘 아침 엄마, 막내, 나 이렇게 세 모녀가 오붓한 담소를 나누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엄마에게 물었다. 아버지 일기를 보니 내가 돌이 지나는 무렵 엄마와 크게 싸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엄마는 깜짝 놀라면서 잊었다고 하셨다. 재차 물으니 더 이상 사양 아니 하고 말씀해 주셨는데 남편에게 큰 소리로 대들었던 사건이란다. 그 당시 이혼할 뻔했던 커다란 사건이었다며 씁쓸해 하셨다.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내가 열이 나더란다.

 

아버지는 군목으로 계시면서 제대하고 농촌봉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고 엄마는 아버지가 장신대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시고 목회를 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의 나이 33세 엄마의 나이 27세이니 젊은 부부의 앞날이 결정되는, 그분들의 삶의 방향이 결정되어야 하는 격변의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결국은 엄마의 주장대로 아버지는 공부를 더하시고 엄마가 경제적인 뒷받침을 하기 위해 바느질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다. 목회하면서 어려움이 생길 때 가끔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 ‘당신이 하라고 해서...’라는 말이 이제 이해가 간다. 그 말에 대항하지 않는 엄마의 태도가 안타까운 나머지 오빠는 비겁한 변명이라고 아버지를 공격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크게 대들지 않고 웬만하면 져주는 형식으로 살아온 배경이 바로 이 사건이었던 것일까.

 

내 부모님의 목회여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결단의 순간이 마련되는 사건과 연결되어 있는 소아마비... 그리고 그 후에 나의 부모님에게 다가왔던 시련의 시간에 대하여는 입장에 따라서 다른 태도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나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다. 우연은 없다고 말하는 기독교신앙의 시각으로 보면 말이다. 남편을 무시하는 말을 내뱉고 난 후 그 다음 날부터 돌이 갓 지난 딸이 열이 심하게 나면서 앓다가 소아마비가 된 현실에 직면한 엄마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엄마가 신앙인이었으므로 느껴야 했을 엄청난 고통을 그리고 엄마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의미 없는 죄의식을 짐작 못하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아니 나의 장애가 그들의 무의식 속에 화인으로 남아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

 

물론 나는 지금껏 내 부모의 나에 대한 죄의식을 감지하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상상하기 어려운 에피소드이지만 엄마의 입에서 그 것을 확인하고 난 오늘 이 밤이... 슬픔이 내리는 이 밤이... 젖어 내리는 눈물이... 60의 나이에 이렇게 아픈 밤을 맞이하고 있는 내가... 나는... 어처구니없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