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엄마와의시간여행

망각에 대한 공포

truehjh 2014. 8. 4. 18:29

 

 

엄마는 아기 같습니다.

주무시는 시간이 아주 많이 길어졌어요.

식사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잠시 성경 읽는 시간,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줍는 시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잠깐의 시간들을 제외하면 거의 주무시는 시간입니다.

방바닥에 떨어져있는 머리카락을 줍다가 지쳐서 다시 주무시고,

성경 몇 절 읽다가 힘들어서 주무시고,

거실소파에 잠깐 앉아계시다가 지루해지면 주무시는가 봅니다.

이렇게 주무시다가는 머리에 나는 땀 때문에 잠이 깼다며 고통스러워하십니다.

   

난 이러한 엄마와 신경전을 벌이며 우수꽝스런 내기를 화고 있습니다.

엄마가 저렇게 조용히, 힘없이, 누워계시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일이 힘듭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최선을 다 해 엄마를 도와드린다고 하고 있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 되는대로 엄마가 반응해 주시지 않으면 화가 나거든요.

식사를 하라고 할 때 싫다고 짜증을 내신다거나, 드셔야할 일정량의 식사를 남기신다거나,

혈압을 잴 때 귀찮다고 몸을 움직이신다거나, 등등의 별별 일도 아닌 일에 짜증이 납니다.

물론 엄마에게 짜증을 낼 수는 없습니다.

나 혼자 가만히 섭섭해 하면서 만족치 못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의 이런 감정은 무엇에서부터 기인되는 것일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두려움이라는 놈 때문인 것 같습니다.

조금씩이라도 회복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끝에는

다시 아프게 될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언젠가는... 확실하지 않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또 다시 엄마의 기억들이 사라져 버리고,

또 다시 고통의 시간들이 엄습해 올 것 같은 공포 말입니다.

그 공포에 짓눌려버릴 것 같아 두렵고, 긴장감이 풀리지 않아 힘겨워 하는 나의 감정 말입니다.

 

엄마가 나를 낳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언젠가 다가올 그 망각의 순간에 대면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나의 두려움입니다.

    

'Fact&Fiction > 엄마와의시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맛 돋우는 약  (0) 2014.09.07
엄마만의 시간들  (0) 2014.08.10
폭염경보와 점심메뉴  (0) 2014.08.02
엄마의 퇴원과 나의 여행유보  (0) 2014.07.31
병원에서의 섬망증  (0) 2014.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