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Fiction/엄마와의시간여행

생명에 대한 태도

truehjh 2014. 11. 7. 22:59

 

지난 여름 병원에서 퇴원하실 때만 해도 기억력이 없다며 웃으시던 엄마가 요즈음은 ‘내가 아직 그럴 때는 아니야’라며 자신의 기억력 없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자존감이 높으신 엄마는 의지가 강한 분이라서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무지하게 노력하고 계십니다.

 

화장실 물을 내리고, 불을 끄는 익숙한 행동이 이젠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수돗물 틀어 놓으신 것도 가끔 잊습니다. 매일 속옷 갈아입으시던 것도 잊었습니다. 청소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고, 약 드시는 시간을 잊는 것은 물론입니다. 시간에 대한 개념이 많이 희미해지셨습니다. 연결된 시간개념은 사라져가지만 순간의 집중력은 대단합니다. 순간순간의 정보처리는 아주 잘되고 있는 듯한데, 단지 연결고리가 무디어져가는 느낌이랄까. 순간들을 기억하고 연결하는 고리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침인지 저녁인지, 식사를 하셨는지 안하셨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십니다.

 

며칠 전에는 처음으로 ‘이렇게 살아서 뭐하니...’라며 한숨을 쉬셨습니다. 속상해 하시는 엄마의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아픕니다. 인간이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까. 생명의 의미,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는 것일까. 두려움이 앞섭니다.

 

하얀 각질이 날리는 엄마 옷과 수건과 이불들... 아버지 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신앙과 이상을 끝가지 소중하게 붙드셨던 분이었고, 현실의 삶보다는 하늘의 삶에 희망을 두셨던 분이라고 기억합니다. 반면에 엄마는 인간의 현실과 한계를 성실하게 실현하고 끝까지 책임을 다 하시려는 노력이 대단하십니다.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시는 성실하고 멋진 태도가 나를 감동시키고,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하시는 엄마가 존경스럽습니다. 꺼져가는 기억력을...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엄마의 노력이 안타깝고, 애절하고, 마음이 아립니다. 인간의 연약함... 육체라는 한계의 비참함이지만... 우리가 인간인 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늘나라에만 소망을 두고 계셨던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하늘나라로 떠날 준비를 하셨고, 현실에 성실하신 엄마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지켜내느라고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삶에 대한, 생명에 대한 어떤 태도든지 인간이 지켜내야 할 본분입니다. 두 분의 생명존중 방법이... 생명에 대한 견해가... 어찌보면 서로 다른 것 같게 느껴지지만 결국은 생명에 대한 동일한 인간존엄의 태도임이 분명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그분의 태도만이 훌륭한 방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엄마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니까 엄마의 태도 또한 존경받아 마땅한, 어쩌면 더욱더 훌륭한 태도라는 생각도 듭니다. 엄마의 노력이, 엄마의 태도가 마음 아프게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