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과 기념일
엄마 안 계시는 첫 생일, 나의 회갑을 맞았다. 우리 나이로 치면 61세이기 때문에 60세라는 애매모호함이 회갑이라는 선을 경계로 해서 완벽하게 정리가 된다. 육십이라는 나이가 50대의 말미인 것 같으면서도 60대의 시작인 것 같아 감정적으로 정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지점에서 회갑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보는 기회가 있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운운하는 환경에서 회갑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에 뒤처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요즘은 자신의 나이에 0.7을 곱해서 계산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젊음을 유지하려는 억지 변명이거나 용기를 내라는 위로의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나이로 젊어지려는 것은 자기기만이 될 것 같아서 그저 웃어넘긴다.
여러 사람들에게서 회갑 축하를 받았다. 축하를 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특히 딸 또는 아들에게서나 받을 수 있을 법한 회갑 선물들을 인생의 후배들을 통해 받고 보니 더욱 그렇다. 갑자기 아들과 딸이 생긴 것 같아 행복하고 뿌듯하고 감사하지만, 그보다 미안하고 안쓰럽고 애틋한 마음이 더 크게 앞선다. 보통의 부모 마음을 알 것 같다. 자녀들에게서 몸에 좋은 건강식품을 받을 때 너희들의 건강이나 챙기라고, 여행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을 때 너희들을 위한 여행이나 하라고, 정갈한 봉투에 담긴 용돈을 받을 때 너희들을 위해서나 돈을 쓰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바로 부모의 마음일 것 같다.
60년을 돌아와 다시 새로운 시간이 열린다는 뜻의 회갑이라고 하니, 나도 뭔가 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아니 의도적으로라도 의미를 부여하여 나의 회갑을 스스로 축하하고 기념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도 익숙하지 않아 겸연쩍은 한 끼의 식사 초대로 끝내고 말았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축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인생이란 그것이 다가 아니지 않은가. 사실 나에게 있어 기념일이란 의미는 아주 생소하다. 지나온 삶 속에서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었던 날이 있었던가. 1년 12달 365일 중에서 나 자신을 기념할 만한 날이 별로 없다. 생일, 졸업, 입학 등 나를 축하할 소수의 날 외에는 해당사항이 없었던 삶이 너무 무미건조하다고나 할까. 지금도 생일과 장애인의 날을 제외하면 축하하거나 기념할 만한 날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흔한 결혼기념일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60년을 살아온 내 삶의 이력서이기도 해서 서글프기도 하다.
이런 복잡한 생각에 잠겨있다 보면, 나의 지난 삶에 과연 무엇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진다. 그러나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것 또한 사실이다. 단지 보여지는 것, 즉 남아있는 결과물이 없을 뿐이다. 답답한 나머지 이제라도 내 삶의 스타일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하루 종일 궁리해 보았지만 그 어떤 결론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삶도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삶이 아닐까. ‘하나님... 걱정은 없어요. 비록 축제 같은 삶은 아니었더라도 일상의 순간들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어요. 앞으로도 그냥 살면 되는 건데요. 그런데 그냥 사는 것이 잘 안돼요. 그냥 살면 안 될 것 같아 자꾸 의미를 찾으려 하고,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자꾸 다른 곳을 향해 두리번거리다 보면, 이렇게 그냥 사는 것도 좋다는 것을 잊어버려요. 그냥 감사하면서, 먹고, 자고,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되는 것을 자꾸 잊어요...’
회갑은 마무리한다는 의미보다는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앞으로의 삶은 다시 새로운 시작이 아니고, 무엇인가 익숙한 것들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 같아 감사하다. 60년을 살면서 어느 정도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었으니 다시 시작해도 헛발을 내디딜 확률은 낮을 것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끝을 아는 즐거움으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면 될 것 같다. 이러한 시작이 진실로 감사한 마음으로의 시작이고, 소박한 꿈으로의 시작이고, 나의 한계 안에서의 겸손한 시작이니 불안하지도 않다. 기회가 되면, 기회가 다가오면, 두려워하지 말고 회피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서면 된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삶의 작은 이벤트일지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젠 정말 인생이 단출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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